고상지 "투박하지만 진솔한 '반도네온' 선율로 탱고 명작 선사"

입력 2020-11-01 15:53
수정 2020-11-01 19:13

19세기 후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로 북적였다. 선원들과 잡부들은 외로움에 못 견디다 서로 껴안고 춤을 췄다. 탱고의 시작이다. 춤에 기원을 둬 일반적인 클래식 곡보다 반 박자 빠르고 선율 변화가 잦다. 흥겹지만 쓸쓸함이 배어있다. 타지에서 느끼는 고독함을 풀어내야 해서다. 얄궃고 복잡한 음악을 연주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악기가 있다. 바로 ‘반도네온’이다.

"정제되지 않고 투박한 선율이 매력으로 다가와요. 듣다 보면 금세 슬퍼집니다. 아코디언에 비해 앙칼진 악기란 생각이 들죠."

지난달 30일 서울 합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38·사진)는 반도네온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연주자들 사이에선 ‘악마의 악기’로 통용된다. 소리내는 게 까다로워서다. 70여개의 건반(키)을 쉴새 없이 눌러 140여개 음을 낸다. 정확한 음표를 짚기도 어렵다. 앞선 음에 따라 같은 음이라도 건반을 달리 눌러야 한다.

“연주도 어렵지만 편곡도 힘듭니다. 악보를 탱고 악단에 맞게 바꾸는 일도 고역이죠. 하지만 원곡이 주는 감동을 충실히 살리려 합니다.”

고상지가 반도네온을 들고 탱고의 매력을 선보인다. 이달 2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여의도 신영체임버홀에서 열리는 ‘밋 더 아티스트’ 무대를 통해서다. 이날 공연에서는 영화 ‘여인의 향기’ OST로 유명해진 카를로스 가르델의 ‘포르 우나 카베챠’와 탱고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아디오스 노니노’, ‘리베르 탱고’ 등을 들려준다. 아디오스 노니노는 피겨 선수 김연아가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프리 프로그램으로 선택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와 재즈 피아니스트 최문석이 협연에 나선다.ㅇ

악기 이름만 들어도 생소하다. 국내에도 연주자가 몇 없다. 고상지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토목공학과 산업디자인을 배우던 중 반도네온을 접했다. 2005년 피아졸라의 단짝 피아니스트 파블로 지글러가 한국을 찾은 무대였다. 그는 지글러보다 반도네오니스트 발터 카스트로에게 매료됐다. 그 길로 학교를 중퇴하고 독학에 나섰다.

“혼자 연습하다 충남대 앞에서 거리 공연을 했어요. 반응이 뜨거웠죠. 그렇게 확신이 들어 반도네오니스트 길을 걸었죠. 그러던 중 지인이 ‘탱고를 배우려면 일본을 가야한다’고 조언해주며 고마츠 료타 선생님을 연결해줬어요."

고상지는 2006년 세계적인 반도네온 연주자 고마츠 료타(48)를 사사하러 일본으로 떠났다. 3년 동안 수학 끝에 고상지는 탱고 본고장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아르헨티나 탱고 오케스트라 학교에 입학해 지휘자였던 네스토르 마르코니(79)에게 반도네온 정수를 배웠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위상이 달라졌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정재형이 작곡한 ‘순정마초’를 연주하며 유명해진 것이다. 이후 반도네온 선율이 필요한 곳에서 그를 찾았다. 김창완 밴드, 이적, 정재형 등과 협업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공연은 줄었지만 오히려 바빴다. 내년이 피아졸라 탄생 100주년이어서다. “올해 말에 4집을 낼 예정이에요. 피아졸라의 숨은 명곡들을 선보일겁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반도네온 협주곡, 피아졸라의 ‘신비한 푸가’ 등을 담았습니다. 대면 공연도 준비하고 있어요. 성남시향과 협주곡을 연주할 거에요. 오케스트라와는 첫 컬래버라 긴장되지만 설렙니다.”

글=오현우 기자/사진=신경훈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