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해 사살' 北의 적반하장,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입력 2020-10-30 17:35
수정 2020-10-31 00:05
북한이 어제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우선적 책임이 한국 측에 있다고 주장했다. 기존 ‘사과’ 입장을 한 달여 만에 뒤엎은 것은 물론, 책임을 온전히 우리 정부에 떠넘기고, 북한을 규탄하는 야당까지 성토하고 나섰다. 이런 적반하장이 따로 있을까 싶다.

북한의 책임 회피는 이번에도 거의 생떼 수준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열점수역(NLL·북방한계선의 북한식 표현)에서 자기(한국) 측 주민을 제대로 관리·통제하지 못해 일어난 사건”이라며 사태의 본말을 전도시켰다. 그러면서 “남측의 각종 험담을 최대의 인내로 자제해왔다”며 “남쪽에서 우리를 비방·중상하는 악담이 도를 넘고 있다”고 되레 발끈했다.

‘김정은 사과’로 유화 제스처를 보였던 북한이 이처럼 발뺌으로 급선회한 것은 공무원 피살사건이 국제적 이슈로 커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엔총회에서 이번 사건이 논의되고, 국제인권단체들이 북한의 반인륜적 행동에 대해 심각한 국제인권법 위반이라고 지적하는 등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본 듯하다.

하지만 북한과 관련된 일에는 저자세로 일관해온 정부에도 큰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피살 공무원을 살릴 촌각을 다투는 기회를 놓치고,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며칠씩이나 함구했으며, 김정은의 사과에 이례적이라며 찬사를 보내기까지 한 정부의 모습에선 북한의 책임을 추궁하고 성의있는 사태 해결을 촉구할 의사를 애초부터 찾아보기 어려웠다. 또 시신을 불태웠다는 당초 군의 발표를 사실상 철회하고, 해경을 동원해 사실상 시신 수색 시늉에 그친 것도 북한의 책임 회피에 멍석을 깔아주고 공세로 전환할 빌미를 준 꼴이다.

북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접하고도 정부는 기껏 “북한의 사실 규명과 해결을 위한 노력, 군 통신선의 우선적 연결을 촉구한다”는 입장을 내는 데 그쳤다. 어제 국제포럼에 참석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입장 변화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고 “접경지역에서 협력을 모색하자”고 또다시 공허한 ‘평화적 교류’ 주장만 되뇌었다. 북한에 계속 끌려가기만 하는 정부의 무(無)대책이 새삼 확인된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북한 비핵화 등 지난(至難)한 한반도 평화 협상을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공무원 피살 사건을 ‘월북 프레임’으로 몰아가려는 인상을 풍기는 정부를 국민이 신뢰할 수 없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