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하나로 소비자에게 시원한 여름 숲 같은 안식처가 되겠다.”
닭고기 전문기업 ‘하림’의 뜻은 한여름의 울창한 숲이다. 한자로 여름 하(夏), 수풀 림(林)을 쓴다.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과 재충전을 선물하는 자연의 쉼터를 뜻한다. 창업주인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지은 이름이다. 불볕더위에 지친 소비자를 위해 국민 보양식인 닭을 제대로 공급하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실제로 하림 육계공장 내부는 숲속처럼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온도인 8도에 맞춰져 있다.
하림은 닭 요리를 좋아하는 일반인에게 익숙한 브랜드다.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하림의 닭을 쓴다’고 내세우는 치킨집도 적지 않다. 닭고기를 외식업체와 급식기업에 공급하는 기업 간 거래(B2B)뿐 아니라, 대형마트에서 하림 브랜드로 생닭을 판매하는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 시장에도 진출해 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치킨 배달 수요가 크게 늘면서 하림 닭을 찾는 회사도 많아졌다.
하림과 같은 ‘브랜드 닭고기’가 나온 것은 30년도 채 되지 않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닭 사육은 한탕주의 사업이었다. 수요예측이 안 된 탓에 닭 소비가 많을 것으로 예상해 양계장을 크게 세웠다가 닭값이 폭락하면 빚 독촉을 못 이기고 야반도주하는 일이 흔하게 벌어졌다.
김 회장도 빚쟁이에게 쫓길 때가 있었다. 고교 재학 때 양계장을 직접 설계·시공하고 1000마리가 넘는 닭을 키우는 양계사업을 시작했다. 1982년 전국적인 닭값 폭락사태로 사업이 무너졌다.
20대 초반 한 식품회사에 취직해 와신상담하던 김 회장은 우연히 한 강연회에서 ‘농업이 살 수 있는 길은 가공 유통사업에 도전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업을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다. 1986년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양계장을 인수해 재기에 나섰다. 업계 최초로 농가와 제휴해 ‘병아리 계약 사육 시스템’을 도입했다. 회사가 직접 부지를 매입하고 직원을 고용해 양계장을 경영하는 게 아니라 계약농가에 종계, 사료 등 닭 사육에 필요한 재료를 공급했다. 농가는 안정적인 수익을 얻고 회사는 생산원가를 아꼈다. 1987년 닭 가공공장을 인수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와 맞물려 양념치킨 체인점이 동네마다 들어서면서 하림의 사업도 함께 성장했다.
하림은 2000년대 들어 농장, 부화장, 사료 생산, 도계, 가공, 판매 등 모든 과정을 하림의 울타리 안에서 가능하게 한 ‘수직계열화’에 성공했다. 닭고기 사업 하나로 여러 사업부문이 하림이라는 큰 숲에서 이뤄지게 된 것이다. 2005년엔 하림 납품농장에서 생산자 노조 격인 농가협의회가 업계 최초로 결성됐다. 당시 농가 한 곳의 연평균 총수익이 5000만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2억1400만원으로 늘어났다.
하림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2500억원을 들여 전북 익산공장을 스마트팩토리로 탈바꿈시켰다.
유통 물류 분야에도 투자하고 있다. 하림그룹은 지난달 서울 양재동에 보유한 옛 한국트럭터미널 부지 9만4949㎡를 도시첨단물류단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하에 화물차량이 출입할 수 있는 유통물류 시설을 두고 지상에는 컨벤션, 공연장, 판매·숙박시설 등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이 물류기지가 유통·식품업계에 또 하나의 ‘여름 숲’이 될지 주목받고 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