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 인내심 한계 넘은 당·정·청의 '부동산 유체이탈'

입력 2020-10-29 17:18
수정 2020-10-30 00:08
최근 전세난을 겪는 국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그제 국회 시정연설을 듣고 크게 낙담하고 있다. 실질적 해법은 제시하지 않은 채 “전세시장을 기필코 안정시키겠다”는 발언에 희망을 갖기보다는 거꾸로 절망하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임대차 3법을 조기 안착시키고, 질 좋은 중형 공공 임대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시장에선 ‘어떻게’가 빠졌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시장이 안정되기는커녕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이번주까지 70주째 상승하며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현실이 이런데도 정부·여당과 청와대는 ‘유체 이탈’ 발언으로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있다. 임대차 3법의 폐해를 직접 경험하기도 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부동산 관련 장관회의에서 “시장을 면밀하게 모니터링·분석하고 시장 안정을 다각적으로 고민할 예정”이라고 했다. 시장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다는 실토로 들린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금의 전세난 등이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렸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하면서 전셋값이 오르기 시작했다”는 책임회피성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거래허가 지역 내에서 평수를 넓히거나 옆 동네로 이사하려는 실수요자들의 주택 거래를 관할 지자체가 불허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부동산=악(惡)’이라는 편협하고 오도된 시각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주택을 불로소득 수단과 자산 양극화의 원흉으로 보는 듯하다. 그런 명분으로 다주택자를 투기꾼으로 몰아 징벌적 세금을 매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들은 다주택자이거나 서울 강남 아파트를 팔지 않는 ‘내로남불’ 행태를 보여 국민을 더욱 화나게 한다.

전세대란을 진정시키려면 주택에 대한 정부의 왜곡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주택은 거주공간으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재산증식과 더 나은 교육이라는 욕구를 두루 함축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부정하는 한 실타래처럼 꼬인 부동산 문제를 풀 수 없다. 먼저 전세난민을 양산한 임대차 3법을 근본적으로 수정해 주택 매매와 전세 가격이 수급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가격 안정은 세금폭탄이 아니라 공급 확대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세난에 시달리는 서민의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