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전·현직 고위간부들이 최근 1년 새 공정위 업무와 관련된 저서를 잇달아 출간하고 있다. 지난 8월 퇴임한 지철호 전 부위원장은 최근 《독점규제의 역사(정부의 시장개입과 시행착오 130년)》를 내놨고, 신동권 공정거래조정원장은 지난 1월 《독점규제법》부터 《소비자보호법》까지 ‘경제법 시리즈’를 완간했다. 지난해 12월엔 김형배 상임위원이 《공정거래법의 이론과 실제》를 출간했다. 고위공무원이 업무와 관련해 학술서에 맞먹는 깊이와 분량을 갖춘 책을 출간하는 일은 다른 부처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저자들은 출간한 이유에 대해 ‘공정위 소관 업무와 공정거래법의 특수성’을 꼽았다. 법 적용과 제도 시행 과정에서 끊임없이 기본 틀이 바뀌고 있어 전문지식을 가진 공무원들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전속고발제 폐지에 대해 우려를 밝힌 지 전 부위원장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2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속고발제 폐지에 반대하기 위한 것이 책 출간의 주요 이유”라며 “수사권을 검찰에 주면 중복·과잉수사가 일어나 기업과 경제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속고발제는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은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 검찰이 기소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지 전 위원장은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은 기업에 대한 형사처벌을 줄이는 추세이지만 한국만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책에 담았다. 그는 책에서 “공정거래법은 도입 이후 시행착오를 통해 규제를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며 “불공정행위를 시정할 때는 선진국처럼 전지가위를 통해 불공정행위를 시정해야지, 도끼로 기업이라는 나무를 아예 찍어 넘겨서는 안 된다”고 썼다.
지 전 부위원장은 “한국 공정위가 2010∼2019년 총 575건을 고발할 동안 일본은 같은 기간 고발이 4건에 불과했다”며 “일본은 악질적인 담합 범죄를 저지른 기업만 고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속고발권이 있는 지금도 고발이 남발되고 있는데 검찰이 처벌의 관점에서 기업을 들여다보면 더욱 문제가 심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1980년 제정된 공정거래법 시행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도 책을 쓴 이유다. 김 상임위원은 “공정거래법은 시장을 규율하는 성격을 갖고 있는 만큼 단순히 법적 측면이 아니라 경제적 관점을 갖고 이해해야 한다”며 “법학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공정거래법 이해에 미진한 부분이 있어 책을 썼다”고 했다. 신 원장도 “공정거래법이 기업 및 시장에 갖는 중요성에 비해 법 적용 사례 등이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아 정리했다”고 소개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끊임없이 바뀌는 시장에 법 규정을 어떻게 적용할지를 놓고 자연스럽게 공부와 토론이 활성화된다”며 “비교적 비슷한 영역에서 계속 근무하며 깊이를 쌓을 수 있다는 점도 책 저술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성수영/노경목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