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1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 클래식 애호가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국내 내로라하는 피아니스트 32명이 총출동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1~32번)을 한 곡씩 번갈아 연주하는 릴레이 콘서트가 열렸다. 오전 10시 문지영의 1번으로 시작해 오후 11시 무렵 박종해의 32번까지 약 13시간 동안 32곡이 유튜브를 타고 실시간으로 울려 퍼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침체된 클래식계에 생기를 불어넣었던 ‘줄라이 페스티벌’의 대미를 장식한 공연이었다.
이 축제를 주최한 더하우스콘서트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릴레이 연주 못지않은 대형 프로젝트를 또 선보인다. 오는 30일 오후 5시부터 다음날(31일) 오후 5시까지 서울 도곡동 율하우스에서 24시간 연이어 클래식을 들려주는 ‘24시간 프로젝트’다. 코로나19 방역 준수로 소규모 공연장엔 관객 20여 명만 들이고 공연 실황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한다. 이번에도 연주자들 면면이 화려하다. 피아니스트 김태형, 첼리스트 한재민, 하모니시스트 박종성, 에라토앙상블 등 모두 24개팀, 87명의 연주자가 공연에 참여한다.
이들을 한데 불러모은 사람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박창수 더하우스콘서트 대표(57·사진)다. 27일 예술가의집에서 그를 만나 기획 의도부터 물었다. “24시간 동안 한 호흡으로 클래식 정수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청중이 천천히 예술에 스며들 수 있게요. 구조적인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짰습니다. 김태형의 ‘엘리제를 위하여’ 독주로 시작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곡 연주 등을 거쳐 마지막에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그리그의 ‘홀베르그 모음곡’까지 촘촘히 기획했습니다.”
이번 콘서트도 더하우스콘서트의 대명사인 ‘마룻바닥 콘서트’ 형식으로 열린다. 다만 공연 시간이 긴 점을 감안해 마룻바닥에 방석 대신 의자를 놓는다. 박 대표가 기획한 마룻바닥 콘서트의 시작은 2002년. 서울 연희동 자택 거실에서 시작했다가 입소문을 타고 관객이 늘어나자 예술가의집으로 무대를 옮겼다. “당시 월드컵 붐을 타고 공연 수요가 많아졌는데 다들 요란한 공연만 쏟아냈어요. 예술은 깊게 음미하고 사유하는 건데요. 규모는 작지만 예술성이 높은 무대를 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왜 마룻바닥일까. 박 대표는 “악기가 내는 깊은 울림을 생생히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처음엔 집이 좁아 의자를 치웠는데 바닥에서 울리는 잔향이 참 아름다웠어요. 경험하기 전에는 모르죠. 이젠 전통으로 자리잡아 지금까지 이어졌어요. 연주 모습을 가까이서 보는 건 덤이죠.”
매주 1회씩 펼쳐진 공연이 800여 회에 이른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소리꾼 장사익, 가객 강권순 등 다양한 아티스트가 이 무대에 올랐다. 이들을 다 어떻게 섭외했을까. 박 대표는 연주자들이 무명일 때부터 지켜본 덕이라고 했다. “연주 실력과 음악 철학을 보고 섭외합니다. 조성진은 학생일 때도 무대에 올렸어요. 김선욱, 문지영도 마찬가지죠. 먼저 알아봐 준 덕분일까요. 유명해진 이후에도 흔쾌히 나와 줬어요.”
박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눈여겨볼 신예 연주자로 31일 오전 4시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소나타를 연주할 신동 첼리스트 한재민(15)을 꼽았다. “열다섯 살인데 실력이 탄탄해요. 음악 열정도 성인 연주자 못지않고요. 중학생으로선 버거운 곡이지만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겁니다.”
박 대표는 공연 기획 예산이 모자라 집까지 팔았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공연을 이어가는 이유는 뭘까. “문화의 ‘뿌리’는 순수예술입니다. 뿌리를 잘 가꾸지 않으면 썩어요. 쉽게 듣고 잊는 음악뿐 아니라 사람들이 곱씹으며 사유할 수 있는 예술이 필요하죠.”
글=오현우/사진 김범준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