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단기이민으로 지방 살린 스가 총리

입력 2020-10-26 17:47
수정 2020-10-27 00:27
일본 혼슈 최북단 아오모리의 작은 해안마을 후카우라에는 후로후시(不老不死)라는 온천이 있다. 바람이 거센 날에는 철썩이는 파도가 탕까지 튀어 들어오는 바닷가 노천온천이다. 후카우라는 일본인도 아는 이가 많지 않은 외딴 시골이지만 후로후시온천은 코로나19 이전까지 한국과 중국 등 세계에서 몰려드는 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온천여관의 셔틀버스로 40분이면 아오모리공항을 오갈 수 있는 교통 인프라 덕분이었다.

1960년 1만9842명에 달했던 후카우라의 인구는 현재 7903명까지 줄어들었다. 외국인 관광객은 소멸 위기에 처한 후카우라를 지탱하는 ‘단기 이민자’로 불린다. 단기 이민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경제브레인인 데이비드 앳킨슨 성장전략회의 위원이 저서 《신관광입국론》을 통해 주창한 개념이다. 해외관광객 유치로 지역 살려외국인 관광객을 시골로 끌어들이면 단기 이민자 역할을 해 쇠락한 지방을 활성화하고 지방의 인구 감소도 보완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외국인 관광객을 단순한 소비 주체로 인식하던 데서 인구 문제 대응과 경기부양책의 수단으로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앳킨슨 위원은 일본의 시골이 기후, 자연, 문화, 식사의 4대 매력을 모두 갖추고 있어 전국 구석구석까지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앳킨슨의 아이디어를 국가 정책으로 구체화한 사람이 스가 총리다. 그가 관방장관 시절 외국인 관광객을 늘리기 위해 비자 규정을 완화한 법안(90일간 무비자 지역 확대)은 지금도 가스미가세키(일본 정부부처가 몰려 있는 행정 중심가)에서 ‘스가 안건’으로 불린다. 스가 안건 덕분에 2012년 836만 명이던 외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3188만 명까지 늘었다. 관광예산을 100억엔(약 1078억원)에서 680억엔으로 늘리는 동안 외국인 관광객이 쓰고 간 돈은 1조엔에서 4조8000억엔으로 증가했다. 580억엔을 써서 3조8000억엔을 벌었으니 대박인 셈이다. 더 의미있는 건 ‘단기 이민자’ 덕분에 지방이 일부나마 활력을 되찾았다는 점이다. 일본이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한국도 '지방소멸'에 대비해야한국 시골의 매력도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 한류 붐 덕에 세계인의 관심도 높다.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한 홍보영상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는 유튜브 조회수가 3억 뷰를 넘었다. 그런데도 외국인을 합천 해인사나 전복을 싸게 양껏 먹을 수 있는 완도로 안내해보라고 하면 대부분 머리를 긁적일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을 전국 방방곡곡으로 흘러들어가게 하는 관광 인프라가 일본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기 때문이다. 규슈만 하더라도 후쿠오카, 나가사키, 가고시마, 사가, 구마모토 등 6개 공항을 통해 전 지역을 1시간 안에 갈 수 있다. 공항까지 이동시간과 비행시간을 합쳐도 3시간이면 서울에서 벗어나 한적한 일본 시골 노천탕에 몸을 담글 수 있다.

여행 인프라는 담당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머리를 짜내서 구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단기 이민이라는 개념을 비자 완화라는 정책으로 구체화한 일본처럼 국가 차원의 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 세계 최하위 출산율에 직면한 한국도 지방소멸 위기에 놓였다. 그런데도 이번 정부에 관광은 정책 우선순위 밖에 있다는 것이 업계 종사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코로나19 이후 한국은 ‘동북아시아 관광허브’를 놓고도 일본과 경쟁해야 한다. 지금 같아선 승산이 없어 보인다.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