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가 '아버지 트라우마' 털어놓은 까닭

입력 2020-10-26 17:37
수정 2020-10-27 00:38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아버지를 소재로 존재론적 근간을 성찰한 논픽션 《고양이를 버리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비채)가 국내에 출간됐다. 그가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선 이후 절연에 가까운 관계가 된 아버지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아버지와 사별한 뒤 10여 년이 흘러 이제 70대가 된 지금 하루키는 아버지가 전해준 삶의 풍경들을 개인적 문장으로 조심스럽게 쌓아올린다.

작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바닷가에 고양이 한 마리를 버리러 간 회상에서 시작해 유년기의 입양과 파양, 청년기의 중·일전쟁 참전, 중장년기의 교직 생활, 노년기의 투병 등 아버지 지아키의 인생을 하나씩 곱씹는다.

이 중 일본군으로 전쟁에 참전했던 아버지의 20대 시절에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대부분 아버지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다. 태평양전쟁 당시 보급품 관리병이었던 아버지는 어느 날 상관의 지시로 중국군 포로를 군도(軍刀)로 살해했던 기억의 조각을 소년 하루키와 공유한다. 이는 아직도 작가에게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아버지의 역사를 전하면서 작가는 “아무리 잊고 싶은 역사라도 숨기지 않고 반드시 사실 그대로 기억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오래 짓누르고 있던 부끄러움을 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계승했듯 역사의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고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 있겠느냐”고 강조한다. 전범국임을 숨기려고 하는 일본 우익들의 역사수정주의 행태를 꼬집는 대목이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