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자 수가 48명(24일 기준)으로 불어나고,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 신고도 전국서 1100여 건에 달하고 있다. 병·의원들은 “백신이 정말 안전하냐”는 쇄도하는 문의에 긍정도 부정도 못 하는 상황이다. 먼저 백신을 맞아야 할 노약자들이 접종을 미루거나 포기할 정도다.
그런데도 정부는 ‘접종 계속’ 방침에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사망자 중 26명에 대해 백신 부작용 증상을 확인했으나 사망과의 인과관계가 매우 낮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부검도 20명이나 했다. 하지만 이런 설명만으로 ‘잘못 맞았다간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잠재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전국 병·의원에 내린 접종 중단 권고를 아직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독감백신의 신뢰가 붕괴 수준에 이른 것은 정부 책임이 아닐 수 없다. 같은 제조번호의 백신 접종 사망자가 추가되면 해당 백신 접종을 중단하겠다던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지난 23일엔 ‘백신에 의한 사망이란 의심이 드는 경우에 한해’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는 또 “(백신 때문은 아니지만) 작년 독감 예방접종 기간에 백신을 맞은 뒤 1주일 안에 숨진 만 65세 이상이 약 1500명”이라고 했다. 당장 오늘부턴 만 62~69세의 접종을 시작하는데 오히려 불안을 더 키우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보건당국이 매일 해온 백신 접종 후 사망자 수 발표도 주 2~3회로 줄인다고는 하나, 수치를 가린다고 불안감이 사라질지 의문이다.
정부는 사태 원인에 대한 여러 지적에도 ‘그럴 가능성 없다’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백신 제조과정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지목되지만, 정부는 제조과정과 식약처 검증을 통해 독성물질을 모두 거른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놓고 있다.
이번 사태는 세계 1위라고 자랑하던 한국 보건의료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냈다. 백신 상온 노출, 백색 입자 발견, 잇따른 사망 신고 등에서 후진국형 모습을 다 담고 있다. 원인 규명과 수습이 급선무이지만, 그동안 ‘K방역’을 자화자찬하며 너무 도취됐던 건 아닌지 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