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야드에 가까운 장타, 신인의 패기, 베테랑의 노련함까지. 1985년생 ‘35세 중고 신인’ 이원준이 올 시즌 첫 승을 앞세워 ‘최고령 신인왕’에 오를 채비를 마쳤다.
이원준은 25일 제주시 타미우스 골프앤빌리지(파72·6982야드)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코리안투어 비즈플레이 전자신문오픈(총상금 5억원) 최종 3라운드에서 버디 7개와 보기 1개를 기록, 최종합계 14언더파 202타를 적어내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상금은 1억원. 프로 데뷔 13년 만에 첫 승을 거둔 지난해 6월 KPGA선수권대회 이후 1년4개월 만에 나온 투어 통산 2승째. 신인상(명출상) 부문에서도 900점을 보태 1위(1680점)로 도약하며 ‘최고령 신인상’에 한발 더 다가섰다. 역대 최고령 신인상 수상자는 2000년 당시 31세 나이로 신인왕에 오른 석종율(51)이다.
2006년 프로로 데뷔한 이원준은 ‘잊혀진 골프 천재’였다. 처음 골프계의 주목을 받은 건 13년 전인 2007년. 네 살 때 부모를 따라 호주로 이민 간 뒤 열다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골프를 시작했음에도 당시 미국 EPSN은 ‘25세 이하 골퍼 중 세계 톱25’에 그를 뽑았다. 190㎝, 93㎏의 건장한 체격과 여기서 뿜어져 나오는 장타를 높이 샀다. 그를 ‘빅히터’로 부르며 치켜세웠다. 최고 장타 기록은 465야드. 당시 LG전자와 10년 동안 20억원의 후원 계약을 맺어 골프계를 놀라게 하는 등 미래가 밝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상이 발목을 잡았고 그의 천재성은 꽃피우지 못한 채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는 일본프로골프(JGTO)와 미국프로골프(PGA) 2부투어에서 근근이 프로 생활을 이어왔다.
그가 다시 빛나기 시작한 건 지난해 코리안투어. 초청 선수로 참가한 KPGA선수권대회를 제패하면서 잊혀진 천재의 부활 가능성을 알렸다. 같은 해 9월 신한동해오픈에만 출전한 그는 신인 자격을 유지한 채 올 시즌을 맞이했다. 신인으로 불리기엔 스스로도 쑥스러운 나이. 그가 “신인상을 받으면 좋겠지만 욕심은 없다”고 한 배경이다.
이원준이라는 걸출한 스타의 등장으로 올 시즌 KPGA 코리안투어 타이틀 경쟁도 막판에 요동치게 됐다. 신인왕에선 김성현(22)이 최종전인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 우승해야 이원준을 제치고 ‘역전 신인왕’을 바라볼 수 있다. 이원준은 또 제네시스 포인트에서 1000점을 획득해 2413점을 기록하며 단숨에 이 부문 5위로 올라섰다. 최종전에서 우승을 추가하면 대상 역전도 가능하다.
3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한 이원준은 무시무시한 장타를 뿜어내며 경쟁자들을 뿌리쳤다. 5번홀(파4)에선 337.1야드, 9번홀(파5)에선 329야드를 날렸다. 5번홀(파4)에서 약 10m 버디 퍼트를 넣는 등 전반에만 4타를 줄였고, 10번홀(파4)과 11번홀(파5)에서 연속 버디를 낚아챘다. 한때 5타 차 선두로 앞서 나간 그는 14번홀(파4)에서 보기를 범해 2타 차까지 쫓겼지만 흔들리지 않고 우승을 확정했다.
김태훈(35)이 1오버파 공동 32위로 대회를 마치면서 제네시스 대상 포인트 새 1위로 등극했다. 2위로 밀려난 김한별(24)은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PGA투어 더CJ컵 출전 이후 귀국해 자가격리 중이다. 상위권 선수들이 촘촘히 붙어 있어 제네시스 대상의 주인은 다음달 5일 개막하는 시즌 최종전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이날만 6타를 줄인 김승혁(34)이 최종합계 11언더파 205타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허인회(33)가 8언더파 단독 3위를 기록했다.
제주=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