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시절 '삼성저격수'로 불렸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사회관계망(SNS)을 통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에 애도의 뜻을 전했다.
박 장관은 25일 페이스북에 올린 추도문에서 MBC 경제부 기자로 일할 당시 이 회장과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1980년대 말 한 여름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세미나에서 이 회장이 '반도체의 미래'에 대해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강의 겸 긴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당시 대학생이던 이재용 부회장이 뒷자리에 함께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며 "게토레이 한잔을 물컵에 따라놓고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 '반도체'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난 지금 반도체에 미쳐있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박 장관은 이 회장이 일본 유학 시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여러 번 봤다는 일본영화 '천칭'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선대 이병철 회장이 강력히 추천해서 여러 번 봤다고 말했던 것이 오래 기억이 남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후 천칭을 수소문해서 나도 봤다"며 일본의 한 마을에 자리한 솥뚜껑 판매회사의 후계자 양성 이야기를 담은 영화 줄거리를 소개했다.
박 장관은 "진정으로 내가 파는 물건에 애정을 가지고 있어야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진심이 전해진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영화였다"고 평가했다.
박 장관은 추도문 끝에서 "1993년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전자는 휴대전화와 반도체에서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다"며 "오늘의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반도체사랑'이 만든 결과다"고 평가했다. "오늘 영화 천칭을 다시 떠올리면서 대한민국 반도체신화를 이룬 이건희 회장님께 깊은 애도의 마음을 표한다"고도 덧붙였다.
박 장관은 초선 국회의원 시절인 2005년 6월 삼성그룹 계열사의 초과주식을 처분하는 것을 골자로 한 '금산법 개정안(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3선 때인 2015년 2월에는 이 부회장과 관련된 '이학수 특별법(특정재산 범죄수익 등의 환수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 밖에 국회 상임위원회,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관련 청문회 등에서 삼성을 정면 겨냥한 질타를 쏟아내며 의원 시절 '삼성 저격수'로 불리기도 했다.
삼성에 대한 박 장관의 이런 태도는 장관 부임 약 1년 만에 180도 달라졌다. 중기부는 지난 4월 7일 '마스크 생산 숨은 조력자인 자상한 기업, 스마트공장 빛을 발하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삼성전자가 마스크 제조업체 네 곳에 스마트공장 노하우를 전수하고 생산공정 개선 및 기술지도에 나서면서 추가 투자 없이 이들 업체의 마스크 생산량이 단기간에 51% 상승했다는 내용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중소기업중앙회와 '자상한 기업' 협약을 맺었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 사업'을 앞장서 벌이는 등 중소기업 지원과 상생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박 장관은 취임 1주년을 맞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과거와 같은 황제 회장 시대는 지나갔다. 삼성 스스로 많이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