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나라'도 못 버텼다…그리스 망친 '복지 포퓰리즘'

입력 2020-10-23 17:17
수정 2020-10-24 01:49
“난 가게를 세 개나 운영했어요. 세 개나 말이에요. 이제는 일도 삶도 자존심도 잃고 매일매일 근근이 살아갈 뿐이죠.”

‘나의 사랑, 그리스’ 속 최고 악역은 세 주인공의 아버지이자 남편인 안토니다. 그는 딸의 연애를 탐탁지 않아 하고, 아내에게는 늘 화를 내며, 아들에게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것을 강요한다. 사업에 실패해 자동차마저 헐값에 팔아넘긴 안토니는 모든 분노를 난민들에게 돌린다. 그는 “모든 것이 완벽했던 그리스의 과거를 난민들이 망쳤다”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2010년대 그리스 경제위기의 책임을 유입 난민들에게 씌우는 것이 합당할까. 경제학계에서는 그리스 경제의 뇌관이 본격적인 난민 유입은 물론 유로존 가입 이전부터 조금씩 타들어가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1980년대부터 이어진 포퓰리즘 정치의 득세와 이로 인한 과도한 국가채무가 유로존 체제에서 경제위기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1980년대의 그리스는 복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 시작은 1981년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사회당 총리의 당선이다. 국민의 표를 얻기 위해 공공복지 확대를 약속한 그리스 사회당은 1980년대에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 무료 운영을 도입하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무상교육을 했다. 무상의료 혜택을 별도의 건강보험 없이 파격적으로 실시했고, 심지어는 월세까지 국가에서 제공했다.

과잉복지는 서서히 그리스를 잠식해갔다. 파판드레우 총리 취임 전인 1980년 22.5%였던 국가채무비율은 1983년 33.6%, 10년 후인 1993년에는 100.3%까지 치솟았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포퓰리즘 정치에 힘입어 11년간 장기집권에 성공했지만, 1980년 9.9%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1985년 15.4%까지 늘었다.

좌파(그리스 사회당)와 우파(신민주당)를 막론하고 국가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그리스 정부는 유로존 가입을 위해 재정적자 수치를 낮춰 발표해왔다고 2009년 10월 고백한다. 그리스는 정부의 통계 조작 고백 이후 급속히 경제위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당시 그리스는 전체 고용인구의 네 명 중 한 명이 공공분야 종사자였다. 그리스는 강도 높은 긴축재정에 들어갔고, 이후 5년 새 GDP는 약 25% 감소한다. 국가채무비율은 지난해 기준 184%로, 일본(237%)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2위를 기록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