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스토리는 언제나 극적이다. 눈보라 치는 파리 시내에서 택시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새로운 시스템을 고안해 내고, 대학에서 동문관리 앱을 구축하던 친구들은 세계 최대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만들어낸다. 이들은 자주 상하구분 없는 ‘소통’ ‘개방’ 등의 조직문화를 강조한다. 격의 없는 논의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해 낸다는 것이다. 많은 기업이 이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정부나 국회에서도 비슷한 문화를 차용하고자 노력한다. 문제는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달라지는 점이 크지 않다는 데에 있다. 현실에서 무시받는 혁신적 아이디어많은 혁신은 소위 ‘미친 아이디어’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등장했을 때 기업이, 최고경영자(CEO)가 이를 이해하며 다양한 수단과 자원을 쏟아붓는 경우는 볼 수 없다. 오히려 획기적 아이디어의 주창자들은 조직 내에서 무시받거나 심지어는 ‘특이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문제는 중요한 시기에 이러한 아이디어를 알아보지 못할 경우 기업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때 세계 무선전화 시장을 제패했던 노키아가 대표적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지구상 스마트폰의 절반 이상을 팔았던 노키아는 혁신 기업의 상징이었다. 조직문화 역시 개방적이고 혁신적이었다. 해야 하는 일 외에 각자 관심 있는 일에 일부의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고, 실수에도 관대했다. 이러한 문화 덕분에 몇몇 엔지니어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물건을 만들 수 있었다. 전체가 터치스크린으로 덮여 있으며, 인터넷이 가능한 전화기였다. 연구진은 이 새로운 형태의 전화기를 사용해 ‘온라인 앱스토어’를 구축하자는 아이디어까지 제안한다. 결론은 모두가 아는 대로다. 이들은 3년 뒤 자신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아이디어를 활용해 애플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조직 문화와 조직 시스템많은 사람은 이런 결과를 조직문화로 해석하려 한다. 대기업의 경우 보수적이고 리스크를 싫어하기 때문에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하려는 문화를 가진 스타트업만큼 많은 기회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창업에 성공한 이들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러한 설명도 충분하지 않다. 빌 게이츠가 20세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고, 마크 저커버그는 하버드 재학 중인 19세 때 페이스북을 창업했지만, 많은 창업가는 업무현장에서 대기업의 일원으로 10~15년간 경험을 쌓은 중간 단계의 30~40대가 대부분이다. 즉, 같은 사람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알아보지 못하는 보수주의자로 행동하다가 시간이 지난 어느 시점에는 흔히 이야기하는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혁신가로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룬샷》의 저자이자 물리학자인 사피 바칼은 이런 현상을 ‘상전이 현상’으로 설명한다.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물 표면을 망치로 내려치면 물이 튀면서 망치가 액체 속으로 들어가지만, 물을 얼린 다음 동일한 망치로 내려치면 표면이 산산조각난다. 모두 동일한 물 분자이지만 어떤 맥락에서는 액체처럼 행동하고, 다른 맥락에서는 고체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동일한 사람이 대기업에서 혹은 스타트업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얼음 덩어리 위에 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얼어붙고, 수영장에 물 한 방을을 떨어뜨리면 다른 물 분자와 섞여버리는 현상을 예로 든다. 즉, 문제는 어느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집단이라는 것이다. 어느 개인의 행동을 분석해서 집단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고, 조직의 상태를 이해하고 나면 구성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이 액체상태일 경우에는 결합하고자 하는 힘보다 자유롭고자 하는 힘이 강하다. 반대로 온도가 0도 이하로 내려가면 두 힘의 크기가 역전된다. 바로 시스템이 전환되는 것이다. 조직 시스템 변화를 통한 혁신창출분명 혁신은 경직적인 시스템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개방과 소통이 혁신을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 기업들은 성공한 기업들의 문화를 베껴오지만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이는 혁신의 결과물인 개방과 소통을 혁신의 원인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조직을 바꾸고자 한다면 문화가 아니라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결합하려는 힘과 자유롭고자 하는 힘의 크기를 역전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조직이든 두 힘은 경쟁한다. 벤처 회사가 프로젝트에 성공할 경우 구성원 모두가 큰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승진에 따른 이익은 큰 관심이 없을 것이다. 반면 대기업에서는 회사가 큰 성공을 하더라도 개인에게 분배되는 금액이 작은 탓에 승진에 따른 이익을 더 추구할 것이다. 두 힘의 크기가 역전될 때 시스템이 변화한다.
혁신을 원한다면 자유롭고자 하는 힘과 얼어붙고자 하는 힘을 관리해야 한다. 외부 환경이 달라지면 물은 얼 수밖에 없지만, 소금을 뿌려 어는점을 낮출 수 있다. 이처럼 문화가 아니라 시스템의 변화를 통해 경직된 조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유연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경직된 조직도 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젊은 날의 스티브 잡스가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 이유도 회사가 커지면서 생겨난 경직적인 조직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12년이 지나 다시 자신의 회사로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조니 아이브로 대표되는 유연한 조직과 팀 쿡으로 대표되는 경직적 조직을 모두 포용하면서 오늘날의 우리가 아는 애플로 키울 수 있었다. 오늘날 조직 구성원 한 명 한 명은 모두 혁신의 씨앗을 품고 있다. 경직적인 것은 조직이지 개인이 아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혁신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혁신하라’는 일방적 요구가 아니라 혁신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시기이다. ☞ 포인트
조직 시스템 변화를 통한
인센티브 체계의 설정이
지속적으로 혁신 창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