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을 쓰고 지웠는지 모른다"라며 "'드라이'하게 사유만 적을까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전달할까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양주일 NHN여행박사 대표이사가 최근 대규모 인원 감축을 하게 된 심정을 담은 글을 사내조직장들에게 보낸 내용의 일부다.
NHN여행박사는 2000년 8월 설립된 여행사다. 일본 전문 여행사로 출발했는데 사세가 커지면서 종합 여행사로 발돋움했다. 2018년 11월 NHN 그룹사에 편입되면서 탄탄한 자금력을 갖춘 여행사로 손꼽혔지만 지루하게 이어진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직격탄을 이겨내지 못했다. 결국 전체 인원 260명중 10명을 제외하고 전직원에게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로 했다.
양 대표는 "이 시간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기원했지만, 오고야 말았다"라며 "매번 다음을 기약한다고 말씀드렸지만, 그 시간은 언제일지 모르게 아득히 멀어졌고 누군가는 모든게 계획이지 않았냐고 분노하시겠지만 이런 이야기만은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다.
그는 "6개월 전 부임할 때만 해도 좋은 회사 만들어 보겠다는 건 진심이었다"라며 "백 마디 천 마디 말을 해도 납득할 수 없는 말들일 것이고, 머리론 이해해도 가슴이 거부할 거 같은데 그래도 잠시 고민했던 조직장님들께 말씀은 드리는 게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글을 이어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큰 피해를 입은 여행업계의 현 상황에 대해선 "여행업에 와서 만난 분과 술한잔 할 때, 들은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며 "(그 분이 그러셨다) 여행업은 미래를 가불해서 살아온 것 같다, 수탁고는 늘었고 통장은 가득했기에 제 살 깎아먹는 줄 모르고 살았다고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양 대표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가 이어질 것으로 보며, 여행업계의 회복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재난은 오래갈 것 같고 다들 아시는 것처럼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며 "여행이 재개되더라도 다들(경쟁사) 달릴 것이고, 그러면 또 마이너스 경쟁이 될 것인데 틀림없이 이 업계는 다운사이징으로 갈 것"이고 내다봤다.
그는 “어제 노사협의회를 열어 희망퇴직과 정리해고에 대해 이야길 드렸다. 그게 뭐 정리해고지 희망퇴직이냐 하시겠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잔고가 없고 대출받아 지원하는 실정”이라며 “마음 같아서는 2달, 3달 급여로 하고 싶지만 100만원이 100명이면 1억. 그놈의 그 알량한 돈이 없다”고 했다.
양 대표는 “메일을 보내놓고 아침이면 후회할지도 모르겠다."며 "제정신으로는 한마디도 못할 거 같아 술 좀 마셨습니다. 술 먹고 메일 쓰는 거 아니라고 배웠는데..."라고 적었다.
이어 “여러분만은 그 사람 어쩔수 없었을 거야라고 생각해주시기를...다른 곳에서 다른 이유로 다시 만나면 좋겠습니다. 그땐 저도 다른 위치에서요. 내일은 해가 늦게 뜨면 좋겠습니다”라고 글을 맺었다.
양주일 대표는 지난 4월 주주총회를 통해 NHN여행박사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그는 2002년 NHN에 입사해 게임제작지원그룹장·UIT센터장·NHN서비스개발랩장·NHN티켓링크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