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청 사무실처럼 꾸민 곳에서 화상 통화를 하는 등 치밀한 수법으로 수백 명에게 100억원이 넘는 돈을 편취한 보이스피싱 일당이 1년4개월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말단 수거책이 아니라 중국 현지에서 활동 중인 보이스피싱 핵심 조직원을 일선서에서 무더기로 검거한 것은 이례적이다.
20일 서울 성동경찰서는 검찰·금융감독원 직원 등을 사칭해 300명이 넘는 피해자로부터 총 140억원을 가로챈 보이스피싱 조직원 45명을 검거했으며 이 중 16명을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이들에게는 범죄단체 조직 및 사기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 조직은 2018년 6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검찰청 직원 등을 사칭하며 피해자 322명으로부터 약 140억원을 가로챘다. 이들은 “당신의 계좌가 범행에 이용됐으니 계좌에 있는 돈을 금감원 직원에게 맡기라”는 거짓말을 한 뒤 돈을 요구했다. 기존 보이스피싱 범죄에도 사용된 방법이지만 이들은 더 치밀한 장치를 마련했다. 보이스피싱 범죄를 의심하는 피해자에게 “못 믿겠으면 영상 통화를 하자”며 검사 사무실과 똑같이 차려진 방을 보여줬다.
경찰은 지난 5월 검거한 현금 수거책을 통해 총책 등 윗선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수거책의 범행 전후 금융거래 내역을 분석하던 중 조직원에게 범죄수익금을 분배한 계좌를 발견했다. 공범 간 통화 및 카카오톡 내역과 금융거래 내역을 분석해 조직원을 한 명씩 찾아 나갔다.
이들 일당은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 7개 도시에 사무실을 두고 범행을 저질렀으며, 현재까지 확인된 조직원만 107명에 이른다. 이들은 하나의 기업처럼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여러 조직에서 분업해 운영하던 콜센터, 대포통장·수거책 모집, 환치기, 개인정보 해킹 등의 역할을 하나의 조직 내에서 통합·관리하는 구조를 갖춘 뒤 범죄 수익을 극대화했다.
경찰은 아직 검거되지 않은 국내 조직원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지명수배를 내렸고, 국외 도피 사범은 인터폴 적색 수배 등을 통한 국제 공조 수사로 검거할 계획이라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구속 송치된 16명 중 1명을 제외하면 중국 현지에서 활동 중인 유력 조직원”이라며 “15명은 중국 현지에서 콜센터, 조직원 교육 등을 담당하는 주범에 속하는 조직원들로 이들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잡았다”고 설명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