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한국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적지 않게 지배하는 유교. 그 유교는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군자를 말한다. 유교 경전들의 모든 가르침은 군자됨을 위한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공자의 어록이 담긴 《논어》가 특히 그렇다.
그런데 《논어》를 보면 군자를 소인과 함께 비교 대조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군자는 덕을 생각하지만 소인은 토지에 민감하고, 군자는 의에 밝지만 소인은 이익에 밝을 뿐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런 소인처럼 굴지 말고 군자답게 행동하라며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어쩌면 《논어》는 군자됨에 대해 논하는 책이 아니라 소인에 대한 지속적인 환기, 상기, 비판, 비난의 모음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소인에 대한 악평이 무척이나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논어》의 소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차근히 톺아보면 묘한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이상하게도 공자가 나쁘게 말하는 소인들의 모습이 꼭 내 모습 같고 우리 모습과 같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사실 이상할 것이 없다. 우리는 본래 소인이다. 소인이니 소인과 닮을 수밖에 없는 일인데 공동체의 대의보다는 내 통장의 잔액이 중요하고, 잘못을 저지르면 꾸며대며 변명만 늘어놓는, 《논어》에 나오는 소인의 모습은 영락없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우리는 원래 소인이다. 군자가 되려고 노력은 해야겠지만 소인이라는 사실에 우울해하거나 이상해할 것이 없다.
사실 군자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도 싶다. 일단 군자가 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준수해야 할 것이 아주 많은데, 초인적인 능력과 인내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군자가 된다고 해서 좋은 세상이 올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군자들이 세상을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군자가 되려고 애를 쓰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21세기고 한국은 아직 부족한 것이 있어도 분명히 근대 시민사회다. 그런데도 우리 같은 소인들이 군자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그럴 필요 없다.
근대라는 것부터가 원래 소인들의 세상이다. 나는 군자, 너는 소인 혹은 나는 소인, 너는 군자 이런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소인이다는 자각에서 바로 근대가 나왔고 인간 한계와 약점에 대한 직시에서 민주주의가 나왔다. 근대사회 자체가 인간 모두가 소인배고 모리배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우리는 소인인데 소인이면 좋은 시민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아니다. 자신이 소인이라는 자각을 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좋은 시민이 많아질 수 있다고 본다. 나도 소인임을 인정하고 내 욕망과 한계를 직시하며, 그러면서 타인의 영역을 존중하면 그게 훌륭한 근대 시민 아닐까? 진짜 소인이 많아져야 진짜 시민도 많아질 수 있다고 보는데 특히 정치하는 곳에서 자신의 소인됨을 자각하는 이가 많아질수록 좋다고 본다.
나는 군자, 너는 소인, 이런 군자-소인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정치할 자격이 있나 싶은데, 군자 눈에는 군자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소인들만 보인다. 사실 세상에 군자가 어디 있나? 자신이 군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그런 사람들의 생각에는 나는 군자고 너는 소인일 뿐이고 상대 당은 소인배일 터인데 타인과 상대 당이 대화와 합의를 통해 늘 공존해야 할 대상으로 보일까? 그저 무시하고 뿌리 뽑고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보이지 않으면 다행이다. 군자라는 자의식, 군자-소인 이분법은 이렇게 비민주적, 반민주적이며 전근대적이다.
여의도에는 군자가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게 아닌가 싶은데, 특히 여당에 보면 과거 투쟁경력 때문인지 군자들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정치판에서는 군자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나도 소인일 뿐이라는 인정과 겸허함을 가진 사람만이 정치를 했으면 하는데, 당신들 군자가 아니다. 소인일 뿐이다. 소인이면 소인답게 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