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 시절 ‘최장수 재무부 이재국장’(3년5개월)을 지냈으며 전두환 정부 때 신한은행장, 노태우 정부에선 은행감독원장과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이용만 무궁화신탁 명예회장( 87·사진). ‘개발연대의 산증인’인 이 전 장관은 “기업 활동을 독려하는 것이 경제 정책의 방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자서전 성격의 저서 《부모님 전상서》 출간을 기념해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다.
이 전 장관은 “기업의 성장이 곧 경제의 성장”이라고 했다. 기업이 잘돼야 고용과 생산, 수출이 늘어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규제보다는 기업 활동을 독려하는 정책 방향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은 “세율을 높여 세금을 더 걷으려 하지 말고 소득을 높여 자연스럽게 세수가 늘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정책을 펼칠 때 장기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활동이 어려워져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이 임금이 낮은 베트남 등으로 본사를 이전할 경우 국가 경제가 크게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현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속도는 한마디로 과속이라고 진단했다. 일본과 비교했다. “최저임금이 16.4% 올랐을 때 일본에서 사업하는 미국 기업인이 ‘한국은 패닉’이라고 평가한 신문기사를 스크랩해 놨어요. 일본은 생산성 향상 수준 이상으로 임금을 올릴 수 없게 돼 있죠. 일본에선 사측에서 제시한 12% 인상안을 노조가 7%로 수정한 적도 있어요. 한국도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 이상으로 임금을 올릴 수 없어야 합니다.”
정부 개입의 최소화도 강조했다. 특히 금융권 인사에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해선 안 된다는 소신을 밝혔다. 이 전 장관은 고(故) 남덕우 국무총리가 재무부 장관이던 시절 이재국장(현재의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으로 은행권 인사를 담당했을 때 청와대와 권력자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았던 일화를 들려줬다. 이 전 장관은 “금융을 정부가 가지고 있을 때도 은행 인사에는 관여를 안 했는데 금융 자율화가 된 지금 ‘이 직원을 왜 뽑았느냐’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악화하고 있는 한·일 관계에 대해 “경제 실무자 간에는 지속적인 교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치적인 사안은 정치인들이 풀어야겠지만, 한국의 기획재정부와 일본 재무성 공무원들이 경제 현안에 대해 항상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 전 장관은 후배 공직자를 대상으로 쓰던 책의 집필을 최근 중단했다고 했다. 그는 “정부의 정책 방향이 기업과 경제 성장을 목표로 하던 과거와 크게 달라져 조언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