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은 지난 9월 전 임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 이상의 공감과 감수성을 더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새로운 규칙”이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우리는 이미 기업 경영의 새로운 원칙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축으로 하는 파이낸셜 스토리 경영을 설정하고 방법론을 구상하고 있다”며 “매출, 영업이익 같은 숫자로만 우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에 연계된 실적, 주가,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꿈을 하나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생존법”이라고 밝혔다.
SK는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ESG 활동을 한다. SK그룹의 경영 활동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지속 가능하기 힘들다는 것이 최 회장의 판단이다. 말로만 사회적 가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 최 회장은 경영자들이 각 계열사를 통해 얼마나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는지 측정하고, 핵심성과지표(KPI)에 넣어 관리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 측정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국민경제 기여 사회성과에선 고용과 세금 등이 포함된다. 비즈니스 사회성과에는 환경, 공정, 제품 및 서비스 등이, 사회공헌에는 CSR프로그램과 기부 등이 있다.
각 계열사는 사회적 가치 창출을 최우선한다. SK건설이 최근 EMC홀딩스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EMC홀딩스는 하·폐수 처리부터 폐기물 소각·매립까지 전 환경산업을 아우르는 종합 환경플랫폼 기업이다. 전국 970개의 수처리시설과 폐기물 소각장 4곳, 매립장 1곳을 운영하고 있다. SK건설은 EMC홀딩스의 사업을 기반으로 리유즈(reuse)·리사이클링(recycling) 등의 기술을 적극 개발하고 도입해 기술력 중심의 친환경기업으로 성장할 방침이다. 안재현 SK건설 사장은 “앞으로 국내 환경산업의 선진화와 글로벌 환경이슈 해결을 돕는 기술력 중심의 친환경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SK케미칼은 지난 2월 사모투자 전문회사(PEF) 한앤컴퍼니에 바이오에너지 사업 부문을 매각, 약 38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SK케미칼 바이오에너지 사업 부문은 바이오디젤과 바이오중유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후발 업체의 도전으로 기존 폴리에스테르 섬유 사업의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SK케미칼은 글로벌 친환경 소재 분야와 생명과학 사업에 향후 중점을 둘 예정이다.
친환경 소재 사업의 핵심은 ‘코폴리에스터 슈퍼엔지니어링 플라스틱(PCT)’이다. SK케미칼은 기존 PCT 성능을 강화하면서도 환경호르몬의 일종인 비스페놀A가 검출되지 않는 코폴리에스터 PCT를 개발해 시장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PCT는 200도 이상 고온에서도 견디는 슈퍼엔지니어링 플라스틱으로, 자동차 소재 및 전기·전자 부품 소재 등으로 활용된다. 최근에는 전기차 소재로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그린 밸런스 2030’을 비전으로 설정했다. 그린 밸런스 2030은 경영 활동에서 환경과 관련한 부정적 영향은 줄이고 긍정적인 영향은 늘려서 조화를 맞추는 것이다. SK 관계자는 “석유화학 기업의 한계인 환경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사업 모델 전환을 강력히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은 친환경 사업 투자 확대에 그치지 않고 배터리 생산부터 수리, 재활용까지 생각하는 가치 사슬을 만들어 전기 운송수단 솔루션 제공자로 성장한다는 계획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