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 JW메리어트동대문스퀘어에서 열린 ‘제19회 한국 소믈리에 대회’ 결선 현장. “와인 코르크를 수집하는 손님을 위해 최대한 코르크를 손상시키지 말고 와인 디캔딩 서비스를 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지원자 대부분이 진땀을 흘렸다. 빈티지가 오래된 와인일수록 코르크 마개가 쉽게 부서지기 때문이다.
최준선 소믈리에(35·사진)는 구멍을 최대한 작게 뚫어 코르크 마개를 가장 빨리 뽑아냈다. 다른 경쟁자와의 격차를 크게 벌린 순간이었다. 프랑스 농식품부가 주최하는 이 대회에서 최 소믈리에는 올해 처음 1위의 영예를 안았다.
그가 소믈리에의 길을 걷게 된 건 와인 애호가였던 부친의 영향이 컸다. 고교 졸업 후 처음 마신 술도 아버지가 권한 와인이었다. 2005년 충북대 천문학과에 입학한 최 소믈리에는 군 제대 후인 2010년 무작정 프랑스로 떠났다. 프랑스어 한마디 하지 못했지만 와인 종주국인 프랑스에 가야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첫해엔 하루에 3~4시간만 자면서 프랑스어 공부에 매진했다. 1년 뒤 프랑스어 공인인증 시험 DALF에서 대학 수업이 가능한 최상위 수준인 C1 레벨을 획득했다. 어학 실력을 갖춘 뒤 프랑스 부르고뉴의 와인 대학 CFPPA에서 소믈리에 과정을 이수했다.
여기까지는 다른 유학파 소믈리에들과 비슷하다. 그는 여기에 ‘포도밭 농부’란 이력을 하나 더 추가했다. 소믈리에 과정을 끝내고 양조 책임자 과정을 밟았다. 최 소믈리에는 “포도 재배와 양조를 배우면 와인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집 근처 와이너리에 일자리도 구해 포도밭 농사꾼으로 일했다. 3년 예정했던 프랑스 유학 생활은 5년으로 길어졌다. 그는 “포도밭에서 일하느라 손은 거칠어졌지만 다양한 토양에 뿌리내린 포도나무의 생육을 이해한 것은 큰 힘이 됐다”며 “이번 대회의 난제였던 코르크 마개 따기에 성공한 것도 양조장에서 코르크가 어떨 때 쉽게 갈라지는지를 관찰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귀국 후 그는 서울 삼청동 이탈리안 레스토랑 ‘두가헌’에서 부지배인으로 5년간 근무했다. 올 들어 서울 한남동 프렌치 레스토랑 ‘그랑아무르’ 지배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소믈리에는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홈술, 홈파티 영향으로 커지는 와인 시장에서 소믈리에가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많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최 소믈리에가 우승한 한국 소믈리에 대회는 와인 종주국인 프랑스 정부가 정식 인증서를 발급하는 데다 국내 대회 가운데 역사가 가장 길어 권위가 높다. 그는 앞서 이 대회에서 두 차례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