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탐미적이면서 폭력적"…일본의 이중성 파헤쳐

입력 2020-10-19 09:00
“일본인은 미국이 지금까지 전력을 기울여 싸운 적(敵) 가운데 가장 낯설었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1887~1948)가 1946년 펴낸 《국화와 칼》의 첫 문장이다. 미군은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왜 20세기 과학시대에 천황을 신격화해서 받드는지, 포로가 되는 것을 치욕으로 여겨 할복까지 하다가도 일단 포로가 되면 더없이 공손하고 협조적으로 나오는지 등 의문투성이였다.

미국 국무부는 1944년 베네딕트에게 이런 일본인들의 특성에 대한 분석을 의뢰했다. 종전 뒤 군정(軍政)을 염두에 두고 있던 미국은 일본 국민이 패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알아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베네딕트가 2년간의 연구 끝에 내놓은 게 《국화와 칼》이다. 국화는 평화를, 칼은 전쟁을 상징한다. 이를 통해 국화(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전쟁)을 숭상하는 일본인의 이중성을 해부했다.

“일본인은 싸움을 좋아하면서도 얌전하고, 군국주의적이면서도 탐미적이고, 불손하면서도 예의 바르고, 유순하면서도 시달림을 받으면 분개하고, 용감하면서도 겁쟁이고,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인다.”

베네딕트는 서로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런 특성이 공존하게 된 원인에 대해 일본 특유의 계층제도, 보은(報恩), 의무(義務), 의리(義理), 수치심(羞恥心) 등 몇몇 핵심적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베네딕트에 따르면 일본인의 가장 큰 특징은 강박관념을 가질 정도로 ‘나름대로 설정된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지키는 일이다. 섬이라는 폐쇄적이고 고립된 환경에서 안정은 절대적 가치로 인식되고 조화를 깨뜨리는 것은 금기였다. “신분체제, 국가 간 관계로 확대시켜”“일본 사회조직은 오랫동안 ‘천황’을 정점으로 막부(幕府: 무사 정권) 최고 권력자인 ‘쇼군’, 영주, 농민, 상인, 천민에 이르기까지 피라미드형 위계 제도로 구성돼 있었다. 그들은 각자 자기 위치에 맞는 삶을 살았으며, 그 위치에서 최상의 안정감을 느꼈다.” 일본은 이 신분 체제를 국가 간의 관계로 확대했다. 국제적인 계층제도의 정점에 도달한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믿었다.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워 아시아 각국에 자기들의 분수에 맞는 위치 찾기를 요구한 배경이다. 일본은 이런 국가 간 계층이 항구적 평화를 보장한다는 믿음을 가졌고, 이를 깨려는 미국의 시도에 대항하면서 태평양전쟁 발발로 이어졌다는 게 베네딕트의 분석이다.

보은도 일본인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개념이다. “일본인은 은혜를 받는 것을 부채로 여겼다. 특히 천황에게 최대의 채무를 졌다고 생각했다. 황은(皇恩)을 무한한 감사로 받아들이고, 이를 반드시 갚는 것을 최대 의무로 여겼다. 전쟁 때 ‘옥쇄(玉碎)’를 하는 것은 천황의 무한한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그런 일본인들이 왜 패전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온순한 국민으로 돌아가 아무런 저항 없이 미국인들을 맞았을까. 천황이 패전을 선언해 이를 따르는 것을 의무로 여겼기 때문이다. “천황의 뜻에 순종하라는 가르침은 양날의 칼이다. 한 일본군 포로가 ‘천황의 명령이라면 죽창 한 자루 외에 아무런 무기가 없더라도 주저 없이 싸울 것이다. 그렇지만 천황의 명령이라면 즉각 싸움을 멈출 것’이라고 한 데서 잘 드러난다.” 미국은 이런 일본의 독특한 문화를 이해했기 때문에 전후 천황제 존속 결정을 내렸다. ‘항전’ 외치다가 패전 받아들인 이유는의리는 사람 간에 발생하는 채무관계를 의미한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받으면 그에게 의리가 생기고, 받은 호의에 대해 똑같은 크기로 갚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를 갚지 못하면 부채의식에 사로잡힌다. 의무는 아무리 애써도 완전하게 갚지 못하는 것이고, 의리는 정확히 같은 양으로 갚아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베네딕트는 일본인의 특성을 ‘수치심의 문화’로 설명하고, 서구의 ‘죄의 문화’와 구분했다. 양심과 죄의식에 의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서구의 관점이라면, 일본인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서양인의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을 개성이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본인들에겐 그런 사람은 수치를 모르는 인간에 불과하다.”

일본인들에게 수치심의 문화는 자기 이름에 대한 명예로 연결된다. 잘못한 것이 있어서 비난을 받는다면 수치스러운 것이지만, 잘못이 없는데도 누군가로부터 경멸을 당한다면 복수의 대상이 된다. 복수는 더럽혀진 자신의 이름에 대한 명예를 되찾는 것이다. 복수가 불가능해지면 목숨을 끊음으로써 명예를 되살릴 수 있어야 수치를 아는 인간이다.

베네딕트는 책 말미에 “일본은 기회주의적인 나라”라며 “평화와 질서로 세계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런 방식을 택할 것이지만, 다른 나라들이 군비 확충으로 나아간다면 무장된 진영으로 조직된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찾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