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글로벌 Edge] 혁신에서 멀어지는 빅테크의 미래

입력 2020-10-15 18:01
수정 2020-10-16 00:15
애플이 지난 13일 공개한 신제품 ‘아이폰 12’ 시리즈가 시장에서 별 반응을 얻지 못하는 듯하다. 애플 주가는 공개 전날 6.35% 급등했지만 정작 신제품이 공개되자 2.65% 하락했다. 다음날인 14일에도 소폭 오르는 데 그쳤다. 애플은 아이폰 12에 5세대(5G) 이동통신을 채택하면서 ‘이 아이폰이 5G를 성장시킬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여 왔다. 스마트폰 사용자의 기종 변경 ‘슈퍼사이클’ 시기와 맞물리는 것도 계산에 있었다. 모든 구독 콘텐츠 서비스를 하나로 모은 번들 ‘애플원’도 출범시킨 터다. 디바이스보다 콘텐츠 혁명에 주력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테슬라 ‘배터리데이’ 기대만큼이나 컸던 애플의 아이폰 12는 시장에서 ‘노 서프라이즈’로 평가되고 말았다.

5G 휴대폰은 애플이 처음은 아니다. 5G 통신 보급도 빠르지가 않다. 인프라가 빨리 구축됐다고 하는 미국에서도 올 7월 기준 60% 정도만 커버된다고 한다. 팬데믹 기간 동안 재택근무하는 사람들이 굳이 5G를 이용하러 도시에 나갈 이유가 없다. 소비자가 5G를 즐길 만한 ‘킬러 앱’을 찾기 힘들다는 사실도 지적할 만한 대목이다. 애플, 혁신보다 守城에 무게미·중 무역분쟁 영향으로 아이폰의 주요시장인 중국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분석도 있다. 무엇보다 애플의 ‘창조적 파괴’를 바랐던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팬들은 디바이스건 플랫폼이건 완전히 새로운 ‘무엇’을 원하고 있다. 애플워치 이외에 혁신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게 애플의 현주소다.

애플의 라이벌인 구글도 마찬가지다. 자율주행에 뛰어들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다 할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른 혁신 제품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애플과 구글 모두 클라우드와 게임 시장에 뛰어들어 치열한 시장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혁신’보다 ‘수성’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일부에선 코로나바이러스로 생활 문화가 바뀐 지금 소비자들이 기존 제품을 개량한 제품에 더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에 수익을 내기 위해선 오히려 시장 개척과 마케팅 강화가 우선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팬데믹 이후 '창조적 파괴' 예고하지만 코로나 시기라도 혁신과 기업가 정신이 죽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이럴 때 혁신가들은 코로나 이후를 바라보며 새로운 꿈을 꾸고 대비를 한다. 경기가 침체하고 우울한 시절에 창업해 시대를 이끌었던 기업이 부지기수다. 애플의 근간인 아이팟도 닷컴 버블이 끝났을 때 탄생했으며 알리바바의 타오바오 또한 중국에서 2003년 사스가 번진 이후 붐을 일으켰다. 우버와 마이크로소프트, 디즈니, 제너럴모터스(GM), 제너럴일렉트릭(GE) 모두 경기 침체기에 창업한 기업들이다.

조지프 슘페터는 저서 《경제발전의 이론》에서 “자본주의 체제에선 경기 침체가 지난간 후에 새로운 기업가가 등장한다. 이 기업가들의 새로운 군단이 형성될 것이다. 번영의 파도가 시작되며 새로운 사이클이 돌아간다”고 했다. 기업가의 혁신성만 있다면 자본주의는 무한히 발전하고 노동자의 생활 수준도 개선된다.

기존 혁신 기업들도 ‘창조적 축적’을 지속한다. 이런 창조적 축적이 코로나 이후 파괴적 혁신을 낳고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이코노미스트지(誌)는 지적한다. 지금 미국의 정보기술(IT) 공룡들은 이런 점에서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 혁신성이 없다면 슘페터가 말하는 ‘창조적 파괴의 영원한 강풍’이 언제 이들을 날릴지 모른다. ‘졸면 죽는다’가 아니라 ‘졸면 모두 사라진다’가 슘페터가 전하는 변치 않는 명제다.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