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이야기] (5) 독이 든 성배? 국민연금 CIO들의 '잔혹사'

입력 2020-10-15 11:02
수정 2020-10-16 10:39
≪이 기사는 10월14일(06:27)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오른 '자본시장의 대통령' 자리였지만 역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들이 걸어온 길은 험난했다. 1999년 기금운용본부 설립 이후 초대 김선영 본부장부터 현재 안효준 본부장까지 총 8명이 '성배'를 들었지만 주어진 임기를 마친 이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마저도 깜짝 사퇴 선언, 이사장과의 갈등 등 여러 파문을 남겼고, 별다른 사건 없이 임기를 완주한 CIO는 단 한 명(5대 이찬우)에 불과하다.

국민연금 CIO의 역사는 아시아 변방의 작은 연기금이 세계 유수의 기관투자가로 거듭나는 성장 스토리임과 동시에 권력 다툼의 역사이기도 했다. 국민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을 정치적 흥정 대상으로 여겨온 권력자들에겐 자본시장의 대통령도 언제든 교체 가능한 부품과 같았다. 20년 간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은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했지만 거대 연금을 둘러싼 권력 다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 어수선했던 기금운용 초창기..정치 압박에 중도 사퇴 잇따라

1999년 국민연금은 급격하게 증가하는 기금의 전문적 운용을 위해 기금운용본부를 설립한다. 기금 규모 5000억원, 6개팀 40명으로 출발한 기금운용본부엔 체계적인 운용 시스템 구축이 급선무였다. 이에 정부는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 동양증권 자산운용본부장을 지낸 김선영 씨를 초대 기금운용본부장으로 임명한다.


김 본부장은 지극히 '한국적'이던 국민연금 기금운용에 장기 가치투자 개념을 도입한 인물로 꼽힌다. 당시는 IMF 금융위기와 벤처붐, 그리고 버블 붕괴로 이어지는 변동장에서 국내 기관들이 뇌동매매에 나서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이를 두고 연기금 전문지 펜션즈아시아(Pensions Asia)는 “위험 요인을 무시하고 단기간에 고수익만을 좇아 수도 없이 주식을 사고 판다. 돈을 어디에 굴릴 지는 엄밀한 분석보다는 밤늦게 자산운용사 영업직원의 술자리 접대에 의해 결정된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초보 수준의 운용에서 벗어나기 위해 김 본부장는 국민연금에 리스크관리와 아웃소싱(간접투자) 기능을 강화했다. 주가가 단기에 급락하더라도 손절매 없이 저평가 우량주를 저가 매수하는 가치투자도 정착시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시도가 그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종목별로 20% 이상 떨어지면 무조건 팔게 돼 있던 당시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감사원으로부터 해임권고를 받은 것. 이를 둘러싼 정치적 압박에 못 이겨 그는 결국 임기 만료 3개월을 앞두고 물러났다.

김 본부장은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장기적으로 자산을 굴리는 연기금이 왜 손절매를 해야 합니까"라며 항변했다. 그는 "연기금조차 주가가 좀 떨어졌다고 팔라고 하니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증시를 좌지우지 하는 겁니다"라고 항변했다.

초대 본부장부터 시작된 국민연금 CIO들의 잔혹사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한미은행 자금운용본부장 출신으로 2002년 10월 2대 CIO에 오른 조국준 본부장은 취임 1년 3개월만인 2004년 2월 돌연 사표를 제출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사임 이유로 "일이 너무 많고 피곤했다"고 밝혔다. 당시 정치권이 추진하던 기금운용위원회 상설화로 인한 기금운용본부 권한 약화에 대한 불만, 국회, 감사원, 국민연금공단으로 이어지는 감사로 인한 피로감이 깜짝 사퇴의 배경이었다는 것이 지배적 견해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5일만에 다시 돌아왔다. 그리곤 당시 연임 없이 3년이던 CIO의 임기를 끝까지 마쳤다.(국민연금 CIO의 임기는 2007년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에 따라 3년에서 기본 2년, 성과에 따라 1년을 연임하는 것으로 바뀐다)

그의 임기 중 국민연금 기금은 150조원대의 초대형 연기금으로 도약했다. 국민연금이 주식과 채권 등 전통자산에서 벗어나 사모기업투자(PEF), 부동산, 인프라 등 대체자산으로 투자군을 다양화하고, SK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두고 벌어진 SK와 미국 헤지펀드 소버린과의 주총 대결에서 3.6%의 지분율로 '캐스팅보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낸 것도 이 시절의 일이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CIO였던 3대 오성근 본부장도 다사다난한 임기를 보냈다. 한국투자신탁 출신의 해외투자 전문가로 동부투자신탁 사장을 지낸 그는 해외투자 확대를 취임 일성으로 내걸었다. 2007년 기금 규모 200조원대를 돌파한 국민연금은 채권에 치우친 보수적 운용에서 벗어나 고수익 자산인 주식, 대체투자를 확대하고 나섰다. 2006년 해외투자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해외자산의 위탁운용을 강화했다. 해외주식 직접운용의 기틀도 이 시절 닦였다.

하지만 그 역시 임기를 7개월여 앞둔 2008년 4월 중도 사퇴한다. 2007년 말 정권이 교체되고, 4월 총선까지 마무리되면서 전 정부 출신 인사들에 대한 대규모 '물갈이' 작업이 진행되면서다. 당시 김호식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비롯한 복지부 산하 주요 공공기관장이 모두 바뀌었다. 국민연금 이사진 가운데선 기금이사인 오 본부장만이 교체됐다.

후임이 정해지지도 않은 채 오직 정치 논리로만 이뤄진 대규모 면직 처리에 국민연금은 4개월간 공석으로 방치됐다. 이 사건은 정치권이 국민의 노후자금 운용을 책임지는 CIO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로 남아있다.


◆ 커지는 기금따라 강해지는 CIO...황금기에 피어난 갈등의 싹

2008년 한국 역사 처음으로 기업가 출신 대통령이 탄생하고,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금융인 출신이 발탁되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지만 기금운용본부에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며 세계 경제는 요동쳤다. 기금운용본부의 지방이전 논란 및 공사화 논란 등 굵직한 사건들이 이어졌다.

기금 규모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수준으로 늘어나면서 글로벌 자본시장에서의 영향력만 놓고 보면 CIO의 위상이 이사장이나 복지부 장관을 넘어서는 현상이 벌어진 것도 이 즈음이다. 이 같은 힘의 역전은 향후 펼쳐질 수많은 갈등의 싹이 된다.

우리은행장 출신으로 이사장이 된 박해춘 이사장과 삼성화재 투자운용팀장, H&B투자법인 대표 등을 지낸 4대 김선정 본부장은 모두 삼성화재 출신으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동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국내 주식 시장의 '고래'였던 국민연금의 행보가 정치권에서 관심사로 부상했다. 국민연금은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급락장에서 국내 주식 및 우량 회사채, 은행채 등에 투자하고, 가격이 떨어진 국내외 오피스 빌딩 등 우량 대체투자 물건을 싸게 인수한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이 전략은 2009년 국민연금이 10.4%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향후 탄탄한 수익률의 기초가 되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정치권은 매달 오락가락하는 투자 실적에 일희일비하며 국민연금을 흔들었다. 이 과정에서 박 이사장이 "국내 주식 비중을 40%로 늘릴 것"이라고 밝혀 소위 '월권'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경영계, 노동계, 정부 등의 인사들이 모여 결정한 자산배분계획을 수행할 뿐인 공단의 이사장이 기금의 전략적 자산배분(중장기)에 개입하려 한다는 이유에서다.

박 이사장은 이에 더해 "기금의 규모가 커진만큼 한 사람이 이를 결정하는 시대도 끝났다"며 기금운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사를 밝히면서 기금운용본부와도 충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역설적으로 커진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권한 다툼으로 이어진 것이다. 갈등 국면은 박 이사장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우리은행장 재직 시절 부실투자와 관련한 징계 조치를 받고 2009년 9월 돌연 사임하며 일단락됐다.

하지만 거물급 국제금융 전문가로 글로벌 투자업계의 마당발로 불리며 금융위원장까지 지낸 금융인인 전광우씨가 새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이사장과 CIO 간의 긴장 관계는 계속됐다. 결국 김 본부장은 2년 임기만을 마친 뒤 연임에는 실패했다.



2010년 10월 취임한 5대 이찬우 본부장은 역대 CIO 가운데 별다른 사건 없이 연임 임기까지 3년을 채운 유일한 인물이다.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을 거쳐 사학연금과 신협중앙회에서 CIO를 지내며 연기금 운용에 정통한 그의 장수 비결은 이사장과의 원만한 관계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많은 금융업계 사람들은 전광우-이찬우 체제가 가동된 3년을 국민연금의 글로벌 위상이 현격하게 높아진 황금기로 평가한다. 2010년 운용자산 300조원, 2013년 400조원을 연이어 돌파한 국민연금은 미국 캘퍼스(CalPERS)등을 제치고 규모 기준 세계 4대 연기금으로 도약했다.

전 이사장은 임기 중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방향을 비롯해 해외 글로벌 투자기관과의 교류에 직접 나서 화제를 모았다. 2012년 미국 출장길에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 빌 그로스 핌코 창립자 등을 직접 만나 투자 현안을 논의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일각에서 월권 논란이 일었지만 '글로벌 연기금으로의 도약'이라는 목표 아래 국민연금은 모처럼 안정기를 맞는다. 여기엔 국내외의 넓은 인맥을 통해 직접 기금운용 전선에 나선 전광우 이사장과 대표적인 비둘기파(온건파) CIO였던 이찬우 본부장이 충돌 없이 공존했던 것이 크게 일조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 오래가지 않은 평화...정치 외풍 논란에 전주 이전까지 겹치며 '풍비박산'

하지만 평화는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서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민연금 이사장, 기금운용본부장이 대립하는 역대급 '인사 파문'을 낳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5월 전광우 이사장의 후임으로 경제학자 출신으로 이미 김영삼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최광 이사장을 임명한다. 그리곤 2013년 11월 3년 임기를 꽉 채운 이찬우 본부장의 뒤를 하나은행 부행장겸 자본시장그룹 대표 출신의 은행맨 홍완선 본부장이 이으면서 국민연금은 최광-홍완선 체제를 맞이한다.



자기 색깔이 강한 두 사람의 만남은 시종일관 삐걱거렸다. 기금운용본부의 독립 공사화를 두고 벌어진 둘 간의 의견 대립은 2015년 10월 최 이사장이 홍 본부장의 연임을 거부하면서 파문으로 번졌다. 최 이사장은 기금운용본부가 국민연금공단에서 분리돼 공사화하는 것에 대해 꾸준히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공사화를 추진하던 정부여당과 기금운용본부의 수장인 홍 본부장은 찬성 측에 섰다.

기금공사화는 보다 큰 차원에선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대선 공약으로 부상해 2013년 법으로 확정된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에 대한 대응책이었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이 사안을 두고 모두가 '마이웨이(My Way)'를 간 결과는 이사장과 CIO의 동반 퇴진으로 귀결됐다.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이 일은 이후 수년 간 이어진 국민연금 암흑기의 서막과 같았다. 2015년 7월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건에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가 아닌 투자위원회 결정으로 찬성표를 던진 것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면서 최광, 홍완선 두 사람은 또 다시 이슈의 중심에 섰다.

최 이사장이 홍 본부장의 연임건을 두고 청와대에서 압력을 가했다고 증언하면서 국민연금은 정국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졌다. 이어 삼성물산 합병건과 관련해 홍 본부장과 문형표 복지부 장관과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등 관련자들이 줄줄이 재판을 받고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 사건으로 국민연금은 압수수색과 관련 수뇌부들의 줄사퇴로 어수선한 시절을 보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재판은 아직 3심 진행 중이다.)

◆ 독이 든 성배가 된 CIO직...석연찮은 1년 3개월의 공백

난맥상을 수습하기 위해 2016년 2월 메리츠자산운용 초대 대표를 지낸 강면욱 씨가 7대 CIO로 영입됐다. 하지만 그는 재임 기간 1년 5개월만에 사표를 내고 국민연금을 떠나게 된다. 이는 기금운용본부 창설 이래 최단기 CIO 기록이다.

취임 초기부터 TK(대구·경북) 인맥을 통한 낙하산 인사라는 의혹을 사며 어려운 첫 발을 뗐지만 강 본부장에 대한 국민연금 안팎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그는 인사 파문을 낳았던 공사화 등 정책적인 부분에 대한 목소리를 내지 않고 기금운용에 집중하고자 했다. 그의 재임 시절 국민연금은 헤지펀드를 투자 전략으로 채택하고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의 원칙)를 도입하는 등 굵직한 변화를 추진한다.

하지만 오로지 기금운용에 집중하기엔 시절이 좋지 않았다. 2016년 10월 불거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는 초유의 혼란기가 펼쳐졌다. 적폐 청산의 바람은 국민연금에도 불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건 관련 수뇌부들의 검찰 소환이 이어졌다. 2017년 전주 이전을 앞두고 한 해동안에만 실장, 팀장급을 비롯해 전체 운용역의 20%에 가까운 30~40명이 퇴사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러던 2017년 7월 강 본부장은 임기를 7개월 가량 앞두고 돌연 사임을 발표한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건을 담당했던 채준규 리서치 팀장을 주식운용실장으로 승진 발령한 것에 대한 정치권의 비판이 이어지면서 이 같은 인사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다. 하지만 실제론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끊임 없는 정치적 외풍 속에서 누적된 피로가 그를 사표로 내몰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의 사임 이후 국민연금의 CIO 자리는 무려 1년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공석으로 비워진다. 자본시장의 대통령이라는 명성과 달리 정치 외풍에 시달리는 '독이 든 성배'라는 인식이 금융 시장에 퍼지며 마땅한 인물을 찾기 어려워진 탓이다.

복지부와 국민연금은 8개월만에 나선 공모 끝에 가까스로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를 CIO 후보로 내정했다. 하지만 그의 임명건은 청와대 인사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며 결국 무산됐다. "프라이버시 문제로 밝히진 못하지만 '중대한 흠결'이 있다"는 것이 당시 청와대가 내놓은 설명이다.

이에 반발한 곽 전 대표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원하라고 권유했다"고 폭로하면서 청와대가 국민연금 CIO 선임 절차에 사전 개입했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리고 이 논란은 "그렇다면 곽태선을 지지한 장하성을 꺾은 진짜 실세는 누구인가"로 번지기도 했다.

곽 전 대표의 낙마 이후 우여곡절 끝에 재공모에 나선 국민연금은 그해 10월 이찬우 본부장 시절 국민연금 주식운용실장을 맡았던 내부 출신 안효준 씨를 8대 CIO로 맞이하며 1년 5개월간의 공백기를 마무리한다. 이후 안 본부장이 최근 연임에 성공하면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하지만 오랜 내상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사석에서 금융권 관계자들은 차기 국민연금 CIO 후보가 되기 위한 제1덕목으로 '실력' 이상으로 '연줄'이나 '코드'를 꼽는다. "결국은 그 정권의 뜻과 맞아야 되는 자리"라는 것이 CIO 후보로 거론되는 수 많은 금융인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777조원 글로벌 연기금의 수장 후보가 되기 위한 덕목이 특정 지역 출신이라거나 여당 인사와의 친분이라는 현실은 '웃프'(웃기지만 슬프다)지만 아직 현실이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