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진의 데스크 칼럼] 잘 엮는 것도 실력이라지만

입력 2020-10-14 17:30
수정 2020-10-15 00:20
잘 엮는 것도 ‘실력’이다. 촛불 시위의 기세를 엮어 대선에서 승리한 것도 그렇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초기 대응에 실패하고도 의료진의 헌신적 봉사를 정부 몫으로 포장해 총선에서 이긴 것도 그렇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잘 엮고 포장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는 것을 보면 이게 진짜 실력인지, 운인지 헛갈릴 정도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나 할 때가 있다.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홈플러스 관련 행사가 그런 사례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임일순 홈플러스 사장 등을 당대표실로 불러 ‘상생 꽃달기’ 행사를 열었다. 홈플러스가 입점주 600여 명의 임차료 부담을 연말까지 덜어주기로 한 것을 민주당의 덕으로 돌리는 자리였다. 이낙연 대표는 물론 박홍근 을지로위원회 위원장, 김종민 최고위원 등 지도부가 대거 참석해 잔칫집 분위기를 연출했다. 폼나는 사업마다 숟가락 얹기그러나 이게 민주당 덕일까. 홈플러스는 지난해 전 직원의 정규직화를 발표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2월 코로나 사태가 터졌을 때는 스스로 입점업체들의 임대료 부담을 줄여 주기로 결정했고, 4월엔 그 대상을 확대했다. 6월에도 기한을 한 차례 더 연장했다. 한 관계자는 “기막힌 타이밍에 들어와서 주연 역할을 하는 데는 정치인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했다.

지난 8월 대형마트들이 채소 할인 행사를 할 때도 그랬다. 당시 A유통사는 긴 장마로 채소값이 득달같이 오르자 미리 확보한 상추와 배추 등을 시중 반값에 파는 이벤트를 기획했다. 이때 정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구매할인 쿠폰(1만원 한도)을 제공할 테니 행사를 미뤄 달라는 제안이었다. 그 후 정부는 다른 유통업계까지 참여하는 채소 할인 행사를 마련하고, 이를 중심으로 채소가격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A사 관계자는 “원래 반값에 팔려던 채소를 지원금까지 받게 됐으니 나쁠 것은 없지만 정부가 세금으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 ‘유례없는’ 할인 쿠폰 사업에 400억원의 혈세를 썼다.

이런 사례는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심지어는 본지가 지난달 국내 최초로 내놓은 농산물가격지수(정식 명칭은 팜에어-한경 한국농산물가격지수(KAPI))사업에도 어떻게 숟가락을 얹을 수 없을까 하고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비슷한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수백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한 상황에서 그보다 훨씬 나은 제품이 나와 버렸으니 그 타는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래도 정부가 낄 때가 있고, 뒤에서 묵묵히 지원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노동개혁 등 난제 신경써야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집권 4년차에 40%대라고 한다. 경제 파탄과 부동산 정책 실패, 측근들의 각종 부정 의혹, 왜곡된 남북관계, 실종된 4강 외교 등 숱한 문제점에도 그 같은 높은 지지율이 의외라는 사람이 많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프레임 정치’로 지지 계층을 단단히 묶어 세우고, ‘엮기’와 ‘끼어들기’로 허접한 정책 성과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실력’이 먹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실력 없는 야당의 존재는 ‘덤’일지도 모르고.

그러나 명심할 게 있다. 대충 엮는 걸로, 운을 기대하는 걸로, 경쟁자의 허약함에 기대서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도, 재집권할 수도 없다. 내년이면 벌써 사실상 집권 마지막 해다. 잃어버린 5년이라는 평가를 듣지 않으려면 노동개혁처럼 어렵지만 꼭 해야 할 일들도 신경 좀 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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