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기채권'에 갈 곳 잃은 돈 몰린다

입력 2020-10-13 17:33
수정 2020-10-14 00:52
‘제로(0) 금리’ 시대에 연말 각종 불확실성까지 맞물리면서 갈 곳 잃은 자금이 초단기채권 펀드에 몰리고 있다. 기업은 물론 개인도 은행 금리보다 1% 높은 안전한 단기채권형 상품에 돈을 맡기는 게 트렌드로 자리잡는 분위기다. 유동성이 역대 최고치에 달하지만 국내 증시가 박스권에 갇히면서 은행을 대체할 투자 상품을 찾는 이들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개인도 기업도 ‘금고’ 대신13일 펀드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초단기채권 펀드인 ‘삼성KODEX단기채권증권상장지수투자신탁’에 최근 한 달간 3681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이 상장지수펀드(ETF)는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정부 및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1년 미만 국고채권과 통안채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1년 수익률은 1.08%에 불과하지만 갈 곳을 잃은 자금이 머무는 일종의 ‘금고’ 역할을 한다. 회사 관계자는 “투자처를 찾지 못한 주식예탁금을 단기적으로 운용할 때 편리하게 투자하는 상품”이라며 “머니마켓펀드(MMF)보다 간편하고 다소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달 들어 개인이 가장 많이 거래한 ETF에 ‘KOSEF 단기자금’이 순위권에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5월 이후 줄곧 증시 하락에 베팅하는 상품들 외에 거래량 상위 5개 ETF에 이름을 올린 것은 ‘KOSEF 단기자금’이 유일하다. 줄곧 1~5위는 KODEX200선물인버스X2 등 인버스, 레버리지 상품이 독식해왔다.

‘KOSEF 단기자금’ 역시 만기 시점이 6개월 이내인 초단기채권을 따라가도록 설계돼 있다. 개인투자자는 이달에만 이 상품을 8650억원가량 거래했다. 업계 관계자는 “공모주 청약 열풍 이후 증권사를 찾은 자금이 이탈하지 않고 초단기채권 ETF 등에 머무르면서 다른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했다.

설정액 10조원 육박실제 증시 불확실성이 커진 올 들어 초단기채권 펀드에 꾸준히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올해만 국내 초단기채권 펀드 설정액은 2조6000억원가량 증가했다. 3년 전 6조9048억원 수준이던 설정액은 9조2528억원까지 급증했다.

개인뿐 아니라 기업도 이 같은 상품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영수 키움증권 법인금융3팀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기업들이 장기채권 대신 단기채권 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당장 수익률은 1%에 불과하지만 변동성을 피하고 보자는 의도다.

일각에서는 증권사들이 고객 유치를 위해 앞다퉈 이벤트에 나서면서 일부 단기채권 ETF에 개인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특정 거래액을 넘어선 고객에 한해 일정액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이벤트를 하면서 변동성이 낮은 단기채권 ETF 등을 통해 이 기준을 충족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