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부터 ‘거리두기 1단계’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조치를 완화한 정부 결정이 개운치 않은 뒷말을 낳고 있다. 며칠 전까지 ‘집단감염 차단’을 내세워 서슬 퍼렇게 도심 집회를 틀어막은 정부가 갑자기 ‘거리두기 완화’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1단계 적용 기준으로 제시한 ‘하루평균 확진자 50명 이하’도 충족되지 않은 상황이다. 엊그제는 하루 확진자가 다시 세 자릿수로 늘어났다. 1단계 지침에 따라 실내 50명, 실외 100명 이상의 모임금지 조치가 풀렸는데 서울에서는 도심 집회를 계속 봉쇄하기로 한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방역 원칙과 기준이 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회의에서 “코로나를 방역의 통제 속에 둘 수 있다는 자신감에 근거한 것”이라고 했지만 불안과 의혹을 씻어낼 수 없었다. 이어진 설명이 차라리 솔직했다. “가장 가슴이 아픈 것은 코로나 장기화로 많은 국민께서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가중되는 민생 경제의 어려움과 국민 피로감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문 대통령은 “자율성이 커진 만큼 책임성도 함께 높일 것”이라는 말도 했다. 방역대책 기조를 ‘원천봉쇄’에서 ‘선(先)자율 후(後)책임’으로 선회하겠다는 얘기여서 주목된다.
‘무조건 봉쇄’냐 ‘자율방역 존중’이냐는 코로나 사태를 동시다발적으로 겪고 있는 세계 각국의 공동 화두(話頭)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원천봉쇄’에 주력해온 국가들이 흔들리고, ‘느슨한 방역’으로 경제 타격을 최소화하고 있는 스웨덴 모델이 점점 더 주목받고 있다. 봉쇄 장기화로 경제적 타격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다.
‘봉쇄’와 ‘자율’의 결과를 가장 극명하게 대비시켜주는 나라가 연방국가 미국이다. 외교와 국방을 빼고 높은 수준의 자치가 이뤄지는 미국 50개 주(州)는 공화당과 민주당, 어느 당이 운영하고 있느냐에 따라 방역과 경제의 성적표가 크게 엇갈린다. ‘큰 정부’를 지향하는 민주당 지배하의 주(블루스테이트)들은 강력한 봉쇄조치 여파로 경제상황이 심각하다. 뉴욕(12.5%) 캘리포니아(11.4%) 펜실베이니아(10.3%) 등 상당수 블루스테이트의 8월 실업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공화당의 주(레드스테이트)들은 다르다. 최대한 경제활동을 보장한 덕분에 비교적 선방하고 있다. 텍사스(6,8%) 조지아(5.6%) 유타(4.1%)의 8월 실업률은 블루스테이트들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요즘 미국에서 2조2000억달러 규모의 추가 경기부양예산 책정을 놓고 당쟁(黨爭)이 치열한 데는 이런 사정이 숨어 있다. 강력한 봉쇄조치로 어려움에 빠진 블루스테이트들이 연방지원자금의 혜택을 가장 크게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 레드스테이트들은 경제적 곤경이 덜한 데다 평소 재정건전성을 지켜온 덕분에 연방지원이 절실하지 않다. 오히려 ‘개미’ 레드스테이트들에서 거둔 연방세금으로 ‘베짱이’ 블루스테이트들 좋은 일만 시켜줄 것이라는 반발이 만만치 않다. 연임 선거를 눈앞에 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조6000억달러 선(線)에서 부양자금을 민주당과 타협하려고 했지만 공화당 의원들이 “5000억달러 이상은 안 된다”고 펄쩍 뛰는 배경이다.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코로나와 차분하게 ‘공존’하는 방안을 찾을 때가 됐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조지프 라다포 미국 UCLA 의대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How to Live with Covid, Not for It)에서 미국 내 코로나19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요양병원 입원자 등 병약자들이며, 기저질환이 없는 40세 이하 미국인의 치명률은 0.01%로 계절성 독감보다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간 막연한 공포에 짓눌린 나머지 과잉 대응해온 데 따른 비용이 너무 크다는 반성론이 확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자율에 맡기되 문제가 생기면 상응하는 책임을 묻겠다”는 쪽으로 방역대책 기조를 바꾸기로 한 것은 그런 점에서 주목된다. 이번 조치가 우리나라를 고질적인 국가주의·설계주의 환상과 수렁에서 건져내 진정한 창의와 시장 활력을 되살려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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