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성 칼라일그룹 회장, 레이먼드 달리오 브리지워터 회장 등 세계 경제·투자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자산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투자 기회가 오히려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밀컨연구소가 12일(현지시간) 화상회의 방식으로 연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 2020’에서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고 있지만 중국 시장은 여전히 유망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코로나로 국가 간 격차 커질 것이규성 회장은 ‘리더십: 전통적 사고를 넘어’ 세션에 참석해 “1년 전 예상했던 저금리와 글로벌 성장 둔화, 국가 간 갈등이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가속화했다”며 “훨씬 빨리 온 미래에 대한 대응 능력이 승자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운용자산 2210억달러(6월 말 기준)의 사모펀드 칼라일을 이달부터 단독으로 이끌고 있다. 이 회장은 “국가·자산등급·산업부문별로 코로나 경제의 회복 속도 측면에서 차이가 날 것”이라며 “여기서 큰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자문은 “코로나 시대엔 자금 동원력이 정책의 유연성을 결정한다”며 “경제력이 강력한 국가는 더 강해지고 그렇지 못한 국가는 약해지는 양극화가 공고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엘에리언 경제자문은 글로벌 채권투자 회사인 핌코의 전 최고경영자(CEO)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회사 브리지워터의 데이비드 매코믹 CEO도 “미국 가계 소득이 급감하는 가운데 정부만 엄청난 돈을 찍어내고 있다”며 “적극 대응할 여력이 있는 국가의 회복세가 더 빠를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투자처와 관련, 스콧 미너드 구겐하임파트너스 회장은 “미 대선은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라며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승리를 전제로 대체투자 부문이 유망해 보인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매클러낸 카길 회장은 “농업이야말로 세계를 더 안전하고 책임있는 방법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분야”라며 지속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미·중 갈등에도 “시간은 중국 편”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은 전문가가 많았다. 달리오 회장은 “집중 견제를 받고 있지만 미 대선 후에도 중국 경제는 성장을 지속하고 속도 역시 갈수록 빨라질 것”이라며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있지만 시간은 미국 편이 아니다”고 말했다. 187억달러어치 자산을 보유한 억만장자 투자자인 그는 7월엔 “미·중 간 자본전쟁으로 달러화 가치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달리오 회장은 “과거 중국은 미국 질서에 도전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위안화의 국제화를 늦췄다”며 “지금은 입장이 바뀐 데다 여러 상황이 중국에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 역시 “앞으로 중국과 인도에서 성장 기회가 많을 것으로 본다”며 “칼라일은 최근 두 지역에 10억달러가 넘는 자금을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엘에리언 경제자문은 “공공 보건망과 경제 재개, 개인 자유 등 세 가지 요건이 전부 충족돼야 정상적인 회복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중국은 개인 자유를 통제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시아에선 한국과 일본이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췄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 파산 문제 불거질 수도자산 시장의 단기 조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숨은 위험이 다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 투자회사인 DE쇼의 브라이언 색 디렉터는 “미 경제의 장기 전망을 낙관하지만 중소기업 파산 문제를 간과해선 안 된다”며 “그냥 좋아 보이는 숫자만 봐선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달리오 회장도 “빈부 격차가 큰 상태에서 경기 충격이 오면 반드시 혁명과 같은 조정 수순을 밟는 게 역사의 교훈”이라며 “돈을 찍어내는 경제는 정상이 아니다”고 했다. 자산운용사 BNY멜론의 캐서린 키팅 CEO는 “선진국들이 대부분 고령화되면서 코로나19 이전에 성장률이 이미 정체상태였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밀컨연구소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각국 정부의 대응이 전반적으로 부실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소가 여론조사 회사인 해리스폴과 공동으로 2월부터 지난달까지 27개국 2만9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6%가 “자국 지도자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정부보다 기업을 더 지지하는 사람이 많았다. 응답자의 61%는 “기업이 정부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또 70%는 코로나19 감염보다 경기 침체를 더 걱정했다. 존 거제마 해리스폴 CEO는 “바이러스보다 더 힘들게 하는 건 각국의 리더십 부재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는
정치·이념 배격하는 '미국판 다보스 포럼'
Milken Global Conference. 밀컨연구소가 1998년부터 매년 개최해온 행사로, 미국판 다보스 포럼으로 불린다. 정치·이념을 배격하는 게 특징이다. 작년까지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렸으나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화상 방식으로 대체됐다. 개최 시기도 당초 4월에서 10월로 늦춰졌다.
유대계인 마이클 밀컨 회장은 1980년대 고위험·고수익 채권인 정크본드 시장을 개척한 인물이다. 주가 조작 및 내부자 거래 혐의로 10년 실형을 선고받았던 그는 2년 복역 후 풀려나 1991년 싱크탱크인 밀컨연구소를 창립하고 자선사업가로 변신했다. 그의 개인 자산은 2018년 기준 37억달러로 평가됐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