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공무원 이름으로 다른 사람이 '새우젓' 선물 보냈다면 뇌물"

입력 2020-10-12 09:38
수정 2020-10-12 09:46
공무원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이 공무원의 지인들에게 새우젓을 선물로 돌렸다면, 해당 공무원은 뇌물을 받은 것으로 봐야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각각 뇌물공여 및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어촌계장)와 B씨(도청 공무원)의 상고심에서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경기 김포시의 한 어촌계장이었던 A씨는 2013년 강화 지역 어민과 조업구역을 두고 갈등을 빚게됐다. 이에 도청 공무원인 B씨에게 자신의 편의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지인의 명단을 주면 선물을 대신 전달하겠다'고 제안했다.

담당 공무원 B씨는 해양수산부 공무원과 경기도청 퇴직공무원, 지인 등 329명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A씨에게 건냈다. A씨는 2013년 11월부터 1여년 간 이들에게 총 384만9300원어치의 새우젓을 B씨의 이름으로 보냈다.

검찰은 A씨가 B씨의 이름으로 보낸 새우젓은 청탁과 함께 건넨 금품이라고 보고, 두 사람에게 뇌물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서류 허위 작성으로 정부 보조금 등을 부정수령하고 지원사업비를 어촌계비로 사용한 A씨에게는 위조사문서와 사기, 업무상 횡령 혐의도 더해졌다.

1심 재판부는 두 사람 모두 죄가 있다고 봤다. "B씨는 자신의 이름으로 새우젓을 발송하는 사실을 알았다고 보이고, 선물 받을 사람들의 명단 작성에도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는 B씨에게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또 B씨 이름의 선물로 전달된 새우젓 액수 만큼인 '384만9300원'을 추징금으로 명령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의 생각은 달랐다. "사회통념상 A씨가 보낸 새우젓을 뇌물로 보기 어렵고, 뇌물로 치더라도 제3자뇌물로 봐야 한다"며 공무원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름을 빌려 선물을 대신 보냈더라도 B씨가 직접 뇌물을 받은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사기 및 횡령 혐의 등이 추가로 있던 A씨에게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내려졌다.

법적 판단은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어졌다. 반드시 뇌물을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 사이에 금품 등이 직접 오고가야만 뇌물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새우젓을 받은 사람들은 선물을 보낸 사람을 A씨가 아닌 B씨로 받아들였다"며 "A씨의 새우젓 출연에 의한 B씨의 영득의사(領得意思)가 실현돼 뇌물공여죄 및 뇌물수수죄가 성립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2심 판단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