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11일 북한이 전날 열린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공개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전략무기와 28분간 이어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연설을 분석하기 위한 긴급 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했다.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청와대에서 열린 NSC 상임위원회에서는 길이와 직경이 굵어지고 사거리가 확장된 신형 ICBM, ‘북극성-4형’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북한이 새롭게 선보인 전략무기와 김정은의 연설 내용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회의를 마친 후 NSC 상임위원들은 “상호 무력 충돌과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남북한 간 여러 합의 사항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NSC 회의에선 이번에 공개된 새로운 무기체계들의 전략적 의미와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계속 분석해 나가기로 했다.
NSC는 서해 피격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망 사건의 공동 조사에 응할 것을 북측에 재차 촉구했다. NSC는 “서해상 우리 국민 사망 사건이 조기에 규명될 수 있도록 우리 측 제안에 북한 측이 전향적으로 호응해 줄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날 김정은의 연설 내용에도 주목했다. NSC 상임위원들은 “환경이 조성되는 대로 남북 관계를 복원하자는 북한 입장에 주목하면서 향후 관련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관계 부처들이 조율된 의견으로 대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정은은 이날 연설 초반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사랑하는 남녘 동포들에게도 따뜻한 이 마음을 정히 보내며 하루빨리 이 보건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고 위로를 전했다.
이날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NSC 회의를 마치고 돌아간 뒤 통일부가 “우리 국민에게 위로를 보내고 남북 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에 주목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도 회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신형 ICBM 공개에 실망감을 표하면서도 예년과 달리 절제된 김정은의 메시지에 즉각적인 공식 반응을 자제하며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이다. 익명을 요구한 미 행정부 고위 관리는 북한의 열병식과 관련한 질의에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 합의를 거론하며 “북한이 금지된 핵과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우선시하는 것을 보는 것은 실망스럽다”며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협상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신형 전략무기 공개에 대한 비판과 함께 북한에 대화 복귀를 촉구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미국’을 특정하지도 않고 핵무기를 강조하지 않은 점, 아직 시험발사를 마치지 않은 전략무기를 공개한 점을 두루 고려할 때 북한이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압박성 카드를 유지하려는 ‘로키(low-key) 행보’라고 분석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