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백건우 피아노 독주회, 명쾌하고 깊은 울림으로 슈만을 불러내다

입력 2020-10-11 17:58
수정 2020-10-12 00:37
‘명불허전’이었다. 명쾌하게 울려 퍼지는 선율과 잔향이 주는 깊은 울림은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왜 ‘건반 위 구도자’라고 불리는지 알려줬다. 지난 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리사이틀 ‘백건우와 슈만’(사진)에서다. 백건우는 첫 곡인 ‘아베크 변주곡’부터 마지막 곡 ‘유령 변주곡’까지 청중의 마음을 파고드는 연주를 통해 슈만이 피아노란 악기로 탐닉하려 했던 예술성을 무대로 불러냈다.

공연 흐름만큼 연주도 노련했다. 페달 활용이 일품이었다. ‘아베크 변주곡’과 ‘세 개의 환상작품집’ 등 화성이 급변하는 아르페지오 구간에선 댐퍼 페달(울림을 줄이는 페달)을 활용해 연주했다. 음 하나하나가 청명하게 청중에게 전해졌다. 음색을 묵직하게 전달할 때는 앞선 음 잔향이 사라지기 전에 부드럽게 음을 잇는 ‘레가토’로 연주했다.

‘다채로운 소품집’과 ‘어린이 정경’에선 슈만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들려줬다. 공연의 백미는 ‘유령 변주곡’. 백건우는 슈만에게 헌정하듯 연주에 앞서 자세부터 바로잡았다. 이어 약 16분 동안 이어진 담담하면서도 서정적인 선율은 청중의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마지막 음표를 친 백건우가 손을 건반에서 떼자 잔향이 공연장을 타고 흘렀다. 순간 침묵이 공연장을 덮었다. 깊은 울림이 객석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가 한참 후 의자에서 일어서자 그제야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롯데콘서트홀 객석을 한 칸씩 띄어 앉은 1000여 명의 관객이 일제히 일어나 치는 기립박수만 10분 넘게 흘렀다. 하지만 공연의 짙은 여운을 즐기고 싶은 듯 아무도 ‘앙코르’는 외치지 않았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