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이 기사는 10월 12일(08:20) 바이오.제약,헬스케어 전문매체 ‘한경바이오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연간 1000억 달러 규모의 진통제 시장에서 진통 효능과 안전성을 모두 갖춘 ‘게임 체인저’를 내놓겠습니다.” 정신 올리패스 대표는 만성통증 환자들이 안전하게 장기간 복용할 수 있는 진통제가 아직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올리패스는 세포 속으로 약물을 전달하는 기술을 확보한 RNA 치료제 개발 기업이다.
올리패스는 안티센스 올리고핵산 (ASO) 기술로 RNA 신약을 개발 중인 기업이다. 기존 RNA 기술의 한계를 극복한 인공유전자(PNA)를 개발해 비마약성 진통제, 노인성 황반변성 및 당뇨성 황반부종 치료제, 고지혈증 치료제를 만들고 있다. 화장품과 의약품을 결합한 코스메슈티컬 제 품으로 미백용 화장품, 주름개선용 화장품 등 위탁생산 사업도 하고 있다.
사명에서도 이 회사의 특징이 드러난다. 정 대표는 올리고핵산(Oligonucleotide)과 ‘통과 지점’을 뜻하는 ‘패스스루(pass-through)’를 합쳐 사명을 지었다. 뛰어난 세포투과성을 바탕으로 안전한 비마약성 진통제를 합리적 인 가격에 내놓아 만성통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효능과 안전성 모두 잡는다, 진통제를 향한 집념
정신 올리패스 대표는 진통제와 인연이 깊다. 서울대 화학과 출신인 그는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에서 1999년부터 2006 년까지 기술연구원으로 일했다. 당시 신약 부문을 맡아 소염진통제 아셀렉스를 개발했다. 그는 직접 진통제 개발을 경험하며 이 시장의 특성과 기술적 한계를 확인했다. 통상 소염진통제는 장기간 복용하면 위와 장에서 출혈이나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등 안전성 우려가 있다.
정 대표는 “지난 100여 년간 수많은 진통제가 개발돼왔다”면서 “안전하면서도 효능이 강력한 진통제를 개발하려는 연구가 세계적으로 진행됐지만 안전성을 확보한 진통제 개발에선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RNA 치료제 기술로는 ASO와 RNA 간섭(RNAi) 두 종류가 있다. ASO가 핀셋처럼 특정 유전자를 표적화하는 방식이라면 RNAi는 단백질 생성에 기여하는 mRNA를 잘라버려 단백질 생성 자체를 막는 방식 이다. ASO는 세포핵 속에 있는 ‘전구체 mRNA’(pre-mRNA)나 세포질에 있는 mRNA와 결합해 선택적으로 특정 엑손을 제거한다. RNAi 방식은 단백질 생성을 억제 하는 방식이어서 미발현된 단백질을 활성화 하는 데는 쓰일 수 없다. 이 때문에 ASO가 적용할 수 있는 질병 영역이 더 넓다.
그러나 두 방식 모두 난제가 있다. 치료 효과를 보려면 약효를 내는 핵산이 세포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세포 겉에 있는 단백질을 표적화하는 저분자화합물 치료제나 항체 치료제와 달리 세포 안으로 침투해야 하는 것이 유전자 치료제의 숙명이다. 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방벽인 세포막은 외부물질의 침입을 막기 위해 표면이 음전하 를 띠는 인으로, 내부가 지질로 촘촘하게 구성돼 있다.
독자 개발한 인공유전자 ‘OPNA’
세포막 안으로 약물을 통과시키는 데서 올리패스의 핵심기술은 빛을 발한다. 올리패스는 ASO에서 핀셋 역할을 하는 물질인 ‘OPNA (Olipass Peptide Nucleic Acid)’를 보유하고 있다. OPNA는 올리패스가 개발한 PNA이다. 이 회사는 PNA에 양이온성 지질을 붙여 세포투과성을 높였다. 세포막 표면에선 음전하를 띠는 인과 OPNA의 양전하를 띠는 지질이 서로를 끌어당긴다. 자석의 S극, N 극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원리다. 정 대표는 “OPNA는 지질이 달라붙어 있어 세포막 속 지질과도 친화력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세포 속으로 들어간 OPNA는 pre-mRNA와 결합한 뒤 질병을 일으키는 데 관여하는 엑손만 떨어뜨린다. 특정 엑손만 떨어뜨리는 이 기전이 ASO의 특징인 ‘엑손 스키핑(exon skipping)’이다. 문제가 되는 엑손이 제거된 mRNA는 정상적으로 단백질을 생성하거나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을 생성하지 않음으로써 치료 효과를 확보한다.
일각에선 세포 속에 들어간 OPNA가 엉뚱한 엑손을 제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정 대표는 “의도치 않은 유전자를 타깃하는 ‘오프타깃 효과’는 무시해도 되는 수준”이라 고 자신한다. 물리적으로 OPNA는 자신의 염기 서열과 쌍을 이뤄 대응하는 premRNA에만 결합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 대표는 “OPNA와 pre-mRNA 간 염기의 배열이 1개만 달라도 결합력이 1만분 의 1 정도로 감소한다”고 했다.
더 안전하고, 경제적인 치료제를 향하여
OPNA는 세포투과성이 뛰어난 덕분에 몇 가지 이점을 갖는다. OPNA 기반 치료제는 기존 유전자 치료제보다 더 적은 용량이 투여 돼도 약효를 낼 수 있다. 약물을 적게 넣어도 되니 과다 투여로 인한 독성 등의 부작용 우려도 줄어든다. 정 대표는 “임상 수준의 투약 량으론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단백질과 OPNA 사이에 물리적 결합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 적은 약물을 쓸 수 있다는 건 경제적 관점 에서도 매력적이다. 이는 다른 유전자 치료제보다 더 저렴하게 약물을 생산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RNA 치료제를 더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정 대표의 바람과 올리패스의 기술이 부합하는 지점이다. 투과율이 높다 보니 투과 경로도 다양해진다. 올리패스는 경구 투여, 점안 등 의 방식으로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올리패스의 대표 파이프라인은 비마약성 진통제인 ‘OLP-1002’다. 영국, 호주에서 임상 시험을 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임상 1상, 호주에서는 임상 1b상을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통증은 세포 내 소듐 이온 채널에 서 이뤄지는 신호 전달로 인해 생긴다. 이 소듐 채널에서 신호 전달을 억제하면 진통효과 를 낼 수 있다.
소듐 채널의 단백질 구조가 비슷한 까닭에 저분자화합물이나 합성화합물로는 특정 소듐 채널 단백질만 표적화하는 진통제 개발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 대표는 유전자 염기 서열상으로 통증 감각에 관여하는 Nav1.7 소듐 이온 채널과 다른 소듐 채널 간 차이가 상당하다는 데 주목 했다. 구조가 비슷한 단백질을 표적화하는 방법 대신 염기 서열이 다른 유전자를 표적 삼아 Nav1.7의 발현을 억제하면 안전한 진통제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 대표는 “과용량을 투여해도 심전도 이상 등의 문제가 없었다”며 “10월 말 임상 1상의 투약이 끝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구에 쓰는 치료제로 ‘OLP-1003’도 개발 중이다. 혈관내피성장인자(VEGF)의 발현을 막아 신생혈관의 생성을 막는 기전이다. 안구 내 혈관이 생성되면서 질병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진 노인성 황반변성과 당뇨성 황반부종이 적응증이다.
정 대표는 “안구에 직접 주사하는 방식인 기존 VEGF 억제제와 달리 점안제로 개발해 환 자들의 심리적 부담을 덜겠다”고 했다.
글 이주현 기자 사진 김영우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0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