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극 대전의 승자는 '구미호뎐'이었다.
지난 8일 새 수목드라마 tvN '구미호뎐', JTBC '사생활', KBS 2TV '도도솔솔라라솔'가 동시에 첫 방송됐다. 각기 다른 장르, 매력을 내세우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치열하게 펼쳐졌던 수목극 대전에서 '구미호뎐'이 전국 일일 시청률 5.8%(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을 차지하며 먼저 승기를 잡았다.
'구미호뎐'보다 1시간 먼저 방송된 '사생활'은 2.5%에 그쳤다. 집계 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동시간대 방영된 '도도솔솔라라솔'은 2.6%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8월 19일 첫 방송을 시작한 MBC 수목드라마 '내가 가장 예뻤을 때'의 3.2%보다 낮은 수치다.
광고 판매 기준이 되는 수도권 가구 기준 시청률에서 '구미호뎐'은 더욱 강세를 보였다. 수도권 가구 기준 평균 6.5%, 최고 7.2%까지 치솟았다. 또한 tvN 타깃인 남녀 2049 시청률은 수도권 평균 4.0%, 최고 4.5%, 전국 평균 4.4%, 최고 4.8%를 기록하며 수도권과 전국 모두 지상파 포함 전 채널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이는 tvN 역대 수목드라마 첫 방송 2위를 기록한 것과 동시에 수목극 대전에서 1위를 거머쥐며 앞으로를 더욱 기대케 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1999년 여우고개 사고로 부모가 사라지고 홀로 남은 남지아(조보아)가 21년 뒤, 구미호 이연(이동욱)의 정체에 다가서는 속도감 있는 전개로 긴장감을 높였다. 이후 또 다른 구미호 이랑(김범)의 계략으로 여우고개를 찾은 남지아는 여우고개에서 일어난 의문의 버스 사고 속, 사라져버린 이연의 정체를 밝히려는 고군분투로 괴담과 판타지의 환상적인 컬래버를 선사했다.
무엇보다 '구미호뎐' 1화에서는 재미없는 씬을 용납할 수 없다는 방송관으로 뭉친 강신효 감독과 한우리 작가의 새로운 세계관과 독창적인 스토리 전개가 시청자들을 끌어당겼다. 전설 속 인물들이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현재에 살고 있다는 ‘구미호뎐’의 세계관에 맞춰 감각적인 영상미가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재미를 안긴 것. 특히, 전설에서 오누이를 공격하던 여우누이가 한 남자와의 해피엔딩을 꿈꾸며 신부가 되고 싶어 하고, 내세 출입국관리사무소로 이름이 바뀐 삼도천에서 컴퓨터와 씨름하는 탈의파(김정난)의 모습 등은 친근감과 함께 신선한 충격을 안기며 흥미를 배가시켰다.
더욱이 캐릭터와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한 이동욱, 조보아, 김범의 열연은 극강의 몰입력을 유발시켰다. 순정파 남자 구미호 이연을 연기한 이동욱은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인간패치 만렙의 모습부터 “저 인간한테 전해. 잡을 수 있으면, 잡아보라고”라는 남다른 카리스마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며 입덕 장려 캐릭터의 표본을 보여줬다. 조보아는 "PD는 간땡이가 붓거나, 간이 배 밖으로 나와 있어야 돼"라는 말을 툭툭 내뱉는 괴담 프로그램 PD 남지아 역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당차고 직설적인 면모로 색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이연의 배다른 동생이자 구미호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이랑 역을 맡은 김범은 순진한 표정으로 순식간에 덫을 놓는 영악함과 "나, 보고 싶었어?"라면서 냉기 어린 미소로 돌변하는 둔갑의 귀재를 표현, 강렬한 존재감을 남겼다.
여기에 여우누이를 제지하는, 이연의 전직 산신다운 스펙터클한 액션과 사람보다 훨씬 빠르고 다이내믹한 동작으로 시선을 압도한 이연과 이랑의 초차원적 액션은 시원한 눈호강과 함께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더불어 극의 포문을 연 아련한 보름달 CG와 실감 나는 교통사고씬, 내세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웅장한 실내와 초월적인 액션 장면에 담긴 CG 등은 신비로운 미쟝센을 완성, 풍성한 볼거리를 선물했다.
그런가 하면, 엔딩에서는 이연의 정체를 의심하게 된 남지아가 자신을 미끼로 던져 이연과 이랑의 모습을 몰래 촬영한데 이어, 영상이 담긴 USB를 들고 추락하며 도발했다. 본능적으로 뛰어내려 공중에서 자신을 포옹하며 살린 이연에게 남지아는 "역시, 사람이 아니었어"라며 확신을 내비쳤고, 이연은 "나를 시험한 것이냐"라며 분노했다. 그 사이, 이를 악문 남지아가 "나는, 너를, 기다렸어"라며 이연의 목에 주사기를 꽂는 반전과 동시에, 서로를 서늘하게 노려보는 극강 투샷 엔딩으로 긴장감을 높였다. 그리고 21년 전에도 자신을 살려준 존재가 구미호 이연임을 기억해낸 남지아의 모습이 담기면서 다음 회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사기꾼들의 속고 속이는 이야기를 다룬 '사생활'은 2010년 고등학생 차주은(서현)의 이야기로 시작됐다. 미리 점 찍은 음주운전 차량에 고의적으로 딸을 밀어 합의금을 받아내고도, 사기를 그저 “부의 재분배를 위한 다큐”라고 당당히 주장하는 차현태(박성근)와 김미숙(송선미)을 부모로 둔 주은. 똥을 된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빼어난 외모에 뛰어난 연기력까지, 미숙의 말대로 그녀는 타고난 '다큐 배우'였지만, 주은의 소망은 그저 평범한 대학생으로 사는 것. 하지만 4년제 대학에 합격하고도, “대한민국은 공부든 뭐든 상위 1%만 살아남는 세상, 나머지는 다 들러리”라며 축하는 커녕 괜한 학비만 날린다는 엄마의 타박만 날아왔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입학,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는가 싶었지만, 이번에는 아빠가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현태는 "본명은 오리무중, 이 바닥에서 나름 훌륭한 꾼"으로 유명한 정복기(김효진)와 파트너 김재욱(김영민)이 설계한 다큐에 '캐스팅'됐다. 그리고 SNS 스타 목사로 위장, 대형 교회로 들어가 성금은 물론이고 '꿈의 성전'을 짓는다는 빌미로 수백억의 투자금을 받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현태 본인도 복기의 설계에 말려들어 전재산을 투자했다는 것. 그렇게 현태는 빈털터리가 된 채, 경찰에 검거됐지만, 성공적으로 다큐를 개봉한 복기는 거액의 흥행 수익을 올리고 해외로 도주했다. 현태에게는 1억을 남겼다. 그가 딸의 미래를 위해 입을 닫고 모든 책임을 지고 옥살이를 하는 대가였다.
그렇게 주은은 복기에게 속절없이 "다큐 소재로 마취 당한" 아빠를 위한 복수를 결심했다. 복기의 한국 컴백을 기다리며 미숙의 사기 동료 한손(태원석)에게 '연기 지도'를 받아 본격적으로 프로 사기꾼의 길로 들어섰다. 그렇게 변장의 귀재로 거듭났고, 몇 년간을 달리며 지쳐갈 때쯤, 우연히 천연덕스럽게 쇼핑중인 복기를 발견했다. 잠시 쉬려 했던 그녀의 눈이 다시 반짝이며, 오랫동안 칼을 갈았던 복수의 서막이 오른 순간이었다.
복기는 버젓이 한국에서 의료기기 다단계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주은은 그 회사에 위장 취업했고, 자금을 관리하는 복기의 측근 박총무(한규원)에게 '커미션 브로커'인 척 접근했다. 그리고 주거래 은행 변경을 유도하는 주은의 미모와 뇌물로 받은 '골드바'에 눈이 먼 박총무는 미끼를 물었다. 주은의 설계에 한손과 미숙까지 힘을 보태 가짜 은행 지점을 만들었고, 결국 박총무가 계좌를 바꿨다. 복기 회사의 모든 자본금이 모이는 계좌가 주은의 손에 들어간 것이다.
이제 "복기가 엉엉 우는 꼴"을 보는 순간만을 기다리던 주은에게 인생 최대의 위기가 닥쳤다. 복기가 이사실로 주은만 따로 불러 대뜸 "타깃이 난가? 아빠 복수를 하기 위해 적진으로 뛰어든 뭐 그런 거?"라며 이미 주은의 계획을 간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린 것. “내가 차목사님 무남독녀도 몰라볼 줄 알았어요?"라고 쐐기를 박는 복기의 얼굴엔 우아한 여유와 무시무시한 냉철함이 공존했고, 주은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완벽한 '뒷통수'로 완성된 반전 엔딩이었다.
이날 방송은 스타일리시한 영상 속에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쾌속 전개로 시청자들이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특히 교도소에서 출소한 주은의 현재 시점에서 그려진 "복수 같은 거 한다고 좋은 세월 다 보내게"란 한손의 조언이 떡밥으로 투척되면서, 주은의 복수 다큐 실패가 교도소행으로 이어진 것은 아닌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오프닝씬을 장식한 "우리는 사생활을 공유하고, 때론 훔치고, 또는 사익을 위해 사람들의 사생활을 수집하고 분석하고 이용하는, 대한민국은 지금 사생활 공유의 시대이자, 사생활 전쟁의 시대다"란 내레이션은 앞으로 이들 꾼들의 전쟁이 나아갈 방향을 암시, 흥미를 자극했다.
사기 전쟁의 포문을 연 서현과 김효진의 화려한 꾼 플레이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강탈한 핵심 포인트였다. 자해 공갈 다큐를 시작으로 스튜어디스, 박사, 알바생, 비행기장, 택시기사, 일본 사생팬에 섹시한 브로커까지, 서현은 다양 그 이상의 캐릭터 변신으로 '보는 맛'을 선사했다. 그간 배우 서현에게서 상상할 수 없었던 파격 변신은 이날 시청자들이 느낀 또 다른 '통수잼' 중 하나였다. 김효진은 오랜만만의 안방극장 컴백이 복귀가 무색한 자유자재 변신을 선보였다. 뛰어난 언변과 즉흥적으로 대응하는 상황에서도 낯빛 하나 변하지 않는 여유는 김효진만의 우아한 아우라를 만나 시너지를 폭발시켰다.
'도도솔솔라라솔'은 주인공 구라라(고아라)의 좌충우돌 수난기와 군가에게 쫓기는 삶을 살아가는 비밀 많은 청춘 선우준(이재욱 분)의 인연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빠 구만수(엄효섭)의 부푼 기대 속에 피아노를 시작했던 구라라. 생애 첫 콩쿠르에 참가한 어린 구라라는 긴장한 나머지 모차르트 작은 별 변주곡의 시작 계이름인 ‘도도솔솔라라솔’만을 반복했다. 웃음이 쏟아졌지만 아빠 구만수는 그런 딸의 연주에 박수를 보냈다. 그날의 아빠를 떠올리며 피아노를 포기하지 않았던 구라라는 졸업연주회에서 특별한 추억이 담긴 모차르트 작은 별 변주곡을 연주해 아빠에게 바쳤다. 구라라의 돌발 행동에 객석은 술렁였지만,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딸의 연주에 구만수는 예전 그날처럼 엄지를 치켜세웠다. 구라라는 졸업연주회를 끝으로 피아노를 자체 휴업했다. 화려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구라라에게 구만수는 갑작스러운 결혼을 제안했고, 아빠의 맹목적인 사랑을 누구보다 잘 아는 구라라는 이번에도 아빠의 뜻을 따랐다.
구라라의 인생 역변은 가장 행복한 순간에 찾아왔다. 결혼식 당일, 구라라는 먼지투성이 차림으로 부케를 들고 나타난 선우준과 마주했다. 퀵서비스 오토바이 사고 현장을 지나던 선우준이 급히 부케를 배달하게 된 것. 낯선 이가 가까이 다가오자 구라라는 그를 밀쳐버렸고, 얼굴을 맞게 된 선우준은 구라라의 새하얀 웨딩드레스에 코피를 쏟았다. 선우준과의 문제적 첫 만남이었다.
구라라는 수정펜으로 드레스에 떨어진 피를 지워내는 선우준에게 사과를 건넸고, 선우준은 "한번 보고 말 사이"라며 쿨하게 돌아섰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장에 들어선 구라라. 하지만 회사의 위기에 혼사를 서둘렀던 구만수는 결국 부도를 막지 못한 채 쓰러졌다. 급기야 소식을 들은 시어머니 임자경(전수경)이 아들 방정남(문태유)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달려 식장을 빠져나가는 '웃픈' 상황이 연출됐다. 구라라는 당황할 겨를도 없이 쓰러진 구만수를 향해 달려갔지만, 결국 구만수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혼자가 된 구라라는 법적인 절차를 마칠 때까지 눈에 띄면 안 된다는 문비서(안내상)의 당부에 장례식장도 지키지 못했다. 경매에 넘어가 압류 딱지가 붙은 집에서 구라라는 아빠와의 시간을 추억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 시각, 누군가에게 쫓기던 선우준은 고시원을 탈출해 주택가를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구라라의 집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를 들은 그는 멈춰 서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두 사람의 아픈 밤이 지나가고,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세상 물정 몰랐던 구라라는 전세 사기로 또다시 위기에 몰렸고, 지친 구라라는 SNS에 '외롭고 힘들면 이곳으로 오지 않을래요?'라는 메시지를 남겼던 익명의 닉네임 '도도솔솔라라솔'을 떠올렸다. '도도솔솔라라솔'은 아빠와의 특별한 추억이 있는 모차르트 작은 별의 계이름. 구라라는 한 줄기 희망을 품고 은포로 향했지만, 도착과 동시에 선우준이 탄 자전거를 피하려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몸을 일으킨 선우준이 사고 차량 속 구라라를 알아보고 놀라는 엔딩은 두 사람의 예사롭지 않은 인연의 시작을 알렸다.
고아라는 첫 로맨틱 코미디에서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구라라의 인생 역변을 다이내믹하게 풀어내 호평을 받았다. 대책 없이 해맑은 모습부터 슬픔에 눈물짓는 감정연기까지 인물의 다양한 감정변화를 유연하게 그려내며 극을 이끌었다. 이재욱의 캐릭터 소화력은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세상과 벽을 쌓고,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는 선우준은 피아노 선율에 눈물지을 줄 아는 청춘이었다. 이재욱은 인물의 미스터리한 매력에 청춘의 싱그러움을 더해 선우준 캐릭터를 완성했다. 김주헌도 번아웃 증후군이 찾아온 정형외과의 차은석으로 분해, 재산보다 봄에 피는 꽃을 더 눈에 담고 싶은 인물의 나른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은포에 입성한 세 사람이 어떻게 얽히게 될지 궁금증을 높였다.
'최고의 이혼'을 공동 연출한 김민경 감독과 '내 뒤에 테리우스', '쇼핑왕 루이' 등을 집필한 오지영 작가의 의기투합도 성공적이었다. 몰아치는 사건 사고 속에서도 속도감을 잃지 않는 섬세한 연출과 통통 튀는 인물들로 유쾌함을 선사한 대본은 ‘시간 순삭’ 드라마의 탄생을 알렸다. 또한 선우준의 비밀, 익명의 응원자 ‘도도솔솔라라솔’의 정체 역시 유쾌한 극에 미스터리 한 스푼을 더하며 궁금증을 유발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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