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7일 도심 한복판에 있는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땅 주인인 대한항공의 반발에도 끝내 문화공원으로 지정했다. 서울시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를 통해 이 땅을 사들여 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LH는 서울시 발표 직후 송현동 부지 매입 계획이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서울시가 LH와 제대로 조율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비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사업 계획을 성급하게 공개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공원 지정 고시는 유보서울시는 이날 제14차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열어 대한항공이 보유한 3만6642㎡ 규모의 송현동 부지를 공원으로 지정하는 북촌지구단위 계획변경안을 의결했다. 앞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영난에 처한 대한항공은 지난 2월 유동성 확보를 위해 송현동 부지 매각 계획을 발표했다. 대한항공이 2008년부터 보유하고 있는 이 땅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 ‘알짜 부지’다. 시세는 최소 5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러자 서울시는 지난 5월 말 이곳을 문화공원으로 지정하겠다고 선언했다. 송현동 부지의 건축행위를 불가능하게 하고 서울시가 내세운 조건으로 이 땅을 사들이겠다는 계획이었다. 대한항공은 국민권익위원회에 문화공원 지정의 위법성에 관한 민원을 제출했고, 권익위는 이달 중순께 최종 조정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김학진 서울시 2부시장은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공원 지정의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결정고시는 권익위 조정이 완료되는 시점까지 유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H “부지 매입 계획 없어”김 부시장은 서울시가 예산을 들여 직접 송현동 부지를 매입하는 대신 LH가 먼저 사들이는 방안을 대한항공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LH가 우선 송현동 부지를 매입한 뒤 현금 확보가 시급한 대한항공 측에 대금을 내년 초 지급하고 서울시 소유의 다른 땅과 교환해 송현동 땅을 LH로부터 넘겨받는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김 부시장은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송현동 부지는 애초 민간에 매각되면 안 되는 땅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시 발표에 대해 당사자인 LH는 사업 추진 계획이 없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LH는 이날 오후 긴급 해명 자료를 내고 “부지 매입 방식은 검토 수준의 단계”라며 “서울시 발표대로 사업을 계획하거나 합의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LH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추석 연휴 전에 이런 제의를 한 적은 있지만 이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해 대안을 찾자고 했다”며 “갑자기 서울시가 사업 방안이 확정된 것처럼 발표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사면초가 몰린 대한항공서울시와 LH가 전혀 다른 방침을 내놓자 대한항공은 크게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서울시가 LH를 통한 부지 매입을 제안한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대한항공 고위 관계자는 다만 “LH를 통한 부지 매각은 물밑에서 조심스럽게 검토해온 사항”이라며 “서울시가 느닷없이 이를 공개해 일이 꼬인 것 같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서울에서 송현동 부지와 바꿀 만한 가치를 지닌 시유지를 찾기 쉽지 않다는 게 LH의 주장이다.
LH의 반발에도 서울시는 “LH와 협의하고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송현동 부지 매각이 표류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업계에선 LH를 통한 송현동 부지 매입이 무산되면 서울시가 부지 강제수용이라는 극단적인 대책을 내놓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대한항공으로서는 가격과 지급 시기 등을 둘러싼 서울시와의 향후 협상에서 불리한 상황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권익위 조정 결과를 지켜보는 한편 서울시와도 계속 협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익위 조정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서울시가 조율되지 않은 대책을 내놓아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권익위는 예정대로 이달 중순께 조정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공원 지정을 강행하면서 유명무실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경민/신연수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