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부커상' 한강 "도서정가제 개악, 책들 죽음 겪게될 것"

입력 2020-10-06 21:19
수정 2020-10-06 21:28

소설《채식주의자》로 2016년 맨부커상을 받은 작가 한강(사진)이 최근 도서정가제 개악 논란과 관련해 “도서정가제가 없어진다면 ‘태어날 수 있었던 책’의 죽음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한강 작가는 6일 오후 서울 서교동 한국출판인회의 지하 강당에서 한국출판인회의와 한국작가회의 주최로 열린 ‘한강, 박준 작가와 함께 하는 도서정가제 이야기’에서 이 같이 밝혔다.

2014년 도입된 도서정가제는 도서에 정가를 표시하고 최대 15%까지만 할인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3년마다 타당성을 검토해 개정하게 돼 있다. 오는 11월 20일이 도서정가제 개정 논의 시한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도서정가제 개정안에 대해 아직까지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출판계는 “문체부가 지난 7월 현행 도서정가제 유지 여부 등을 다루는 민관협의체 합의안을 파기하고 기존 논의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이라고 통보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강 작가는 “최대 피해자는 독자들, 그리고 독자가 될 수 있는 아직 어린 세대들”이라며 “독자로서 도서정가제가 없는 세계를 겪어봤고 그게 뭔지 너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내 첫 번째 정체성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라며 “도서정가제가 개악될 경우 이익을 보거나, 무언가를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소수일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많은 걸 잃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박준 시인은 도서정가제를 숲에 비유했다. 그는 “출판문화를 숲이라고 하면, 숲이 있는 공간에서는 선의의 경쟁 등을 통해 문화 안에서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다”며 “이 숲이 건강하게 작동하도록 경계가 되는 것이 도서정가제”라고 말했다. 또 “도서정가제를 없앤다는 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숲의 경계선을 없애고 다른 도심과 연결해 싸워서 이기라는 논리”라고 덧붙였다. 이어 “도서정가제를 만들어 놓으니까 숲에서 풀이 절로 자라듯 1인 출판사가 늘고 독립서점이 생기고, 작가들도 다양한 목소리와 이야기를 낼 수 있게 됐다. 도서정가제 하나로 아주 자발적으로 생겨난 것들”이라고 말했다.

출판인회의는 소설가 김연수, 정유정, 김탁환, 시인 나희덕, 만화가 김금숙 등 작가 19명에게서 받은 도서정가제 지지 의견을 공개했다. 작가들은 “산책 나간 길에 동네서점에서 흥미로운 책을 사 들고 돌아와 읽는 밤을 꿈꾸기에, 도서정가제를 지지한다”(김연수), “도서정가제는 작은 출판사와 동네 책방들을 살리는 최소한의 산소호흡기”(정유정), “도서정가제는 작가, 출판사, 책방, 독자가 공생하고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조건”(나희덕), “책 한권을 만나는 것은 한 우주를 만나는 것, 완전도서정가제는 그 우주를 지키는 기본”(김금숙) 등의 의견을 밝혔다.


출판인회의와 작가회의는 이날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작가 3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135명의 답변을 집계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도서정가제의 개정 방향에 대해 작가의 70%가 유지(39.7%) 또는 강화(30.2%)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30% 였다. 신뢰도 95%에 표본 오차는 ±2.9% 수준이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