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한항공 송현동 땅' 기습 처리하겠다는 서울시

입력 2020-10-07 01:00

서울시가 대한항공이 보유한 종로구 송현동 부지(사진)에 대한 공원 지정을 강행하기로 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최종 조정안이 나오기 전에 기습적으로 공원화 계획을 확정짓겠다는 방침이어서 거센 논란이 일 전망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7일 제14차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열어 송현동 부지 관련 북촌지구단위 계획변경안을 상정할 계획이다. 변경안은 대한항공이 보유한 3만6642㎡ 규모의 송현동 부지를 특별계획구역에서 문화공원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 관계자는 “담당부서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해당 안건을 상정하게 됐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선 서울시가 권익위의 조정에 발이 묶이기 전에 속전속결로 공원 지정을 끝내려는 속내가 깔린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영난에 처한 대한항공은 지난 2월 현금 확보를 위해 송현동 부지 매각 계획을 발표했다. 이 땅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알짜 부지’로, 시세는 최소 5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러자 서울시는 5월 말 이곳을 문화공원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송현동 부지의 건축행위를 불가능하게 하고 서울시가 내세운 조건으로 이 땅을 사들이겠다는 계획이다. 2월 대한항공의 송현동 부지 매각 발표 이후 15개 업체가 입찰 참가의향서를 냈지만, 서울시의 공원화 발표 후 6월 이뤄진 입찰엔 한 곳도 응찰하지 않았다.

서울시는 대한항공 측에 부지보상비로 시세를 훨씬 밑도는 4670억원을 제시하고 있다. 이마저도 2022년까지 분할 지급하겠다는 방침이다. 대한항공은 6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송현동 부지 매각과 관련해 서울시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며 권익위에 문화공원 지정의 위법성에 관한 민원을 제출했다. 권익위는 조정회의를 거친 뒤 “대한항공, 서울시 등이 참여하는 조정을 통해 해결하기로 합의했다”고 지난달 21일 발표했다.

당초 권익위는 추석 연휴 전인 지난달 말 최종 조정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가격과 지급 시기 등을 놓고 서울시와 대한항공이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조정안 발표가 늦춰졌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권익위의 최종 조정안이 나오기도 전에 송현동 부지 공원화를 일방적으로 강행하기로 한 것이다. 서울시가 권익위의 조정 결정이 강제권한이 없는 권고라는 점을 악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시는 겉으론 권익위 조정에 응하면서도 한편에선 공원화 상정 계획을 치밀히 준비해왔다는 것이 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한항공은 서울시의 공원화 강행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진 않았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내부에선 서울시의 권한 남용이자 횡포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대한항공으로서는 가격과 지급 시기 등을 둘러싼 서울시와의 향후 협상에서도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박은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권익위 조정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시가 공원화 지정을 강행하는 건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라며 “민간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