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등 ‘기업규제 3법’을 신중히 처리해 달라는 경제계 요구를 사실상 거절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기업규제 3법과 노동법을 함께 손보자”는 야당 측 제안도 일축했다. 세계 국가들이 자국 기업과 힘을 합쳐 경제 위기 극복에 나선 가운데 한국만 유독 기업을 옥죄는 규제를 양산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낙연 “법 통과 시기·방향 못 바꿔”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6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직접 찾아간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기업들은 당초 반색했다. 기업규제 3법에 대한 경제계 우려를 반영하겠다는 의사 표시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대표와 손 회장은 서울대 법대 선후배로 경제 현안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날 이 대표와 동행한 김진표, 양향자 의원은 여당에서도 ‘기업을 이해하는 정치인’으로 꼽히고 있다. 다른 경제단체 간담회에는 오지 않았던 국내 6대 그룹의 사장급 임원들이 이번 회담에 동석한 이유이기도 하다.
회담 결과는 이런 기대와 달랐다. 이 대표가 기업인의 의견을 듣는 비공개 면담 시간은 고작 20분. 면담 직후 이 대표는 “(기업규제 3법에) 보완할 게 있으면 하겠다”면서도 “시기를 늦추거나 방향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한 것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전날 요구한 노동 관련법 개정 제안도 면담 직후 곧바로 기자들에게 거절하겠다는 의사를 천명했다. “지금은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더 두텁게 포용할 때”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내에선 “노동법 개정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라며 “당내 주류인 친문(친문재인) 세력을 의식한 행보”라고 분석했다. 사실상 법 개정 가이드라인 제시이날 간담회의 시작은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인사는 “기업규제 3법에 대한 의견을 비교적 자유롭게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법과 제도를 바꿔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은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2018년 현대차를 공격한 사례를 예로 들며 “당시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했다면 경영권 방어에 실패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오해가 있다면 풀어야 한다”면서도 “이번 정기국회에서 기업규제 3법을 처리하겠다는 원칙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순간이었다.
민주당이 일부 양보한 부분도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우리 기업들이 외국 헤지펀드의 표적이 되게끔 하는 것은 막고 싶다”고 했다. 해외 투기세력의 공격 등을 우려해 재계가 반대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선임’ 조항에 대해 다소 물러설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 조항은 이사회 멤버인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다른 이사들과 달리 대주주 의결권을 3% 이하로 제한하는 규정이다. 민주당 정책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표 발언이 당내에서 여러 갈래로 쏟아지는 이견들에 대해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재계 “결국 정치인 들러리였다”여당은 중지를 모아가고 있지만 야당 측은 여전히 방침이 정리되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은 기업규제 3법과 관련해 이 대표와 비슷한 입장이다. 그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감사위원 분리선임’ 등 일부 문제 조항을 보완하면 이번 정기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하지만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방송 인터뷰에서 “기업규제 3법과 노동관계법을 함께 처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각각 처리한다”는 김 위원장의 전날 발언과 다른 뉘앙스다. 국민의힘 한 중진의원은 “세부 법 조항으로 들어가면 의원들의 생각이 제각각”이라며 “단일 안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제계는 고강도 규제 법안이 졸속 처리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대관담당 임원은 “기업 의견을 듣겠다고 찾아와 자리에 앉자마자 ‘법안 처리 시기와 방향은 예정대로’라고 말한 것은 결국 목소리를 듣는 시늉만 하겠다는 게 아니냐”며 “이날 행사는 법안을 밀어붙이기 위한 요식행위였다”고 꼬집었다.
김소현/좌동욱/이선아/도병욱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