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내년부터 골프장 캐디, 보험설계사 등 특수고용직 종사자는 원하지 않더라도 산재보험에 가입하게 될 전망이다. 정부가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 사유를 제한해 사실상 의무가입으로 전환하기로 하면서다. 또 정부는 ‘주된 사업주’ 한 명과 계약을 맺고 있는, 즉 전속성이 강한 특고 종사자에게만 산재보험 가입을 허용해 왔으나 이 기준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필수 노동자 보호를 위한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필수 노동자 안전 및 보호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회의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국무회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 대면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필수 노동자를 위한 대책 마련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필수 노동자는 보건의료, 요양·육아 등 돌봄, 배달 및 택배 종사자와 환경미화원 등을 지칭한다.
대책에는 택배 기사, 보험설계사 등 특고 종사자의 산재보험 가입을 사실상 강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금은 특고 종사자가 산재보험 가입을 원하지 않으면 사유에 관계없이 ‘적용 제외 신청’을 통해 가입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적용 제외 신청 사유를 종사자의 질병, 육아, 사업주의 귀책 사유로 인한 휴업 등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아프거나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산재보험 가입이 의무화된다는 얘기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은 “사회보험의 성격을 감안하면 당연히 전체적으로 적용돼야 한다”며 “하반기 법 개정을 통해 적용 제외 신청 사유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특고 종사자가 상당수인 필수 노동자들의 안전망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에서 이번 대책을 도입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당사자들이 산재보험 가입을 원치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특고 종사자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16.2%(2020년 5월 기준)에 불과하다. 특히 종사자가 35만 명이 넘는 보험설계사의 경우 4만2000명(12%)가량만 가입했고, 골프장 캐디는 가입률이 4.7%에 그쳤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산재보험 가입 대상 특고 직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지난 7월부터는 기존 택배기사, 학습지 교사 등 9개 직종에 방문판매원, 대여제품 방문점검원, 방문교사, 가전제품 설치기사, 화물차주 등 5개 직종을 추가했다. 여기에 더해 고용부는 이날 소프트웨어 프리랜서도 산재보험 적용을 받도록 하는 내용의 산재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임 차관은 “특고 산재보험 가입률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당사자 의사에 반해서 적용 제외되는 부분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며 “특고 종사자들의 정확한 의사가 어떤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정부는 또 현재 ‘주로 하나의 사업’에 노무를 제공하는 특고 종사자만 가입하도록 한, 이른바 전속성 기준도 고치기로 했다. 전속성 기준이 산재보험 가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예컨대 대리운전 기사는 약 20만 명으로 추산되지만 현행법상 13명만 산재보험법상 종사자로 등록돼 있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 중 법리적 쟁점, 분야·직종별 특수성 등을 반영해 현행 전속성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 밖에 코로나19 사태 속에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고 처우가 열악한 필수 노동자를 지원하는 대책도 내놨다. 집단감염 우려가 큰 ‘3밀(밀집·밀폐·밀접)’ 사업장에는 칸막이, 열화상 카메라 등 감염예방 장비 구입 금액의 최대 70%(사업장당 최대 3000만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환경미화원 등의 휴게시설 마련 비용도 최대 70% 지원한다. 또 최근 노동계에서 요구하고 있는 대형마트 박스 손잡이 설치와 관련한 가이드라인도 12월 마련해 배포하기로 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