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출신 '개천용'이 말한다

입력 2020-10-05 17:49
수정 2020-10-12 17:13

“자율형 사립고가 아니었다면 저 같은 울릉도 출신 학생이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이제는 그 사다리마저 사라진다니 안타깝습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정치외교학부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박민혁 씨(27)는 울릉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2011년 서울대에 입학했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과 섬마을이라는 한계를 극복했다. 그는 “자사고인 전주 상산고에 진학하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말했다.

2009년 학교 교육의 다양화를 위해 처음 도입된 자사고는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비판 속에 2025년 일괄 폐지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자사고는 입학 정원 중 20%를 저소득층, 농어촌학생 등으로 선발하는 사회통합전형으로 운영하면서 오히려 ‘교육의 사다리’를 제공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특별취재팀이 만난 자사고 사회통합전형 선발 학생들은 “자사고 덕분에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며 “자사고 폐지가 오히려 저소득층 학생들의 기회를 뺏는 일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에 재학 중인 오경철 씨(21)도 교육 사다리를 제대로 탄 학생 중 하나다. 그는 녹록지 않은 가정형편으로 직업계고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담임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와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사회통합전형으로 대광고에 합격하게 됐다.

오씨는 “첫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들었을 때는 수학이 8등급, 영어가 7등급이 나와 크게 실망했지만 자사고에 다닌다는 것이 오히려 도전정신을 일깨웠다”며 “전교 1등도 해보고 졸업할 때는 정시 성적만으로도 서울대를 노려볼 만큼 성적이 크게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사고를 단순히 사교육 주범으로만 몰아 폐지하는 정책은 취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