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채무 전망치 축소 의혹…국회예정처 "근거 공개하라"

입력 2020-10-04 17:48
수정 2020-10-05 09:37
국회예산정책처가 기획재정부에 장기 재정 전망과 관련해 명확한 근거 제시를 촉구했다. 기재부가 향후 40년을 내다 본 국가채무비율이 국회예산정책처 전망치와 비교해 최소 절반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낮은 것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재부가 확장 재정을 위해 국가채무비율 전망치를 고의로 축소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예정처 “전망 근거 투명하게 공개하라”국회예산정책처는 4일 발간한 ‘재정동향&이슈’ 보고서에서 “정부는 재정의 지속가능성 유지를 위한 지속적 논의를 하기 위해 보다 상세하고 투명한 장기 재정 전망 산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기재부가 ‘2020~2060년 장기 재정 전망’에서 제시한 세 가지 시나리오 외에 더욱 어려운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향후 재정위험 요인을 보다 면밀하게 분석·논의하기 위해 현재의 법과 제도가 유지되고 지출 구조조정 가정이 전제되지 않는 ‘기준선 전망’ 및 시나리오 전망 정보가 상세하게 공개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실효성 있는 재정준칙 도입도 주문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국회에서 재정준칙 의무의 준수 여부, 재난 및 경제충격 등의 시기에 재정준칙 예외를 적용할지 여부 등을 심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앞서 지난달 2일 발표한 장기 재정 전망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043~2045년 84~99%로 정점을 찍은 뒤 2060년에는 64~81%로 내려갈 것으로 내다봤다. 재정을 혁신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충해 60%대로 관리하겠다는 목표치도 제시했다. 장밋빛 정부 재정 전망국회예산정책처는 기재부의 장기 재정 전망이 “재정지출을 통제하려는 정책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출 구조조정을 병행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전망치라는 지적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달 28일 발표한 장기 재정 전망에서 ‘지출 구조조정 가정이 전제되지 않는’ 전망치를 제시했다. 전망에 따르면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44.5%에서 2030년 75.5%에 이어 2040년에는 103.9%까지 올라 100%대에 진입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어 2050년에는 131.1%, 2060년에는 158.7%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됐다. 2060년 기준으로 기재부 전망치의 두 배 수준이다.

기재부와 국회예산정책처 전망이 차이가 나는 것은 정부 지출과 인구, 거시경제 등에서 각각 다른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정부가 신축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재량지출이 2060년까지 경상성장률(연평균 2.2%)보다 느리게 증가하는 것을 전제로 산출했다. 기재부는 “정부가 지출을 줄이려는 노력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반면 국회예산정책처는 재량지출이 경상성장률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재부는 인구 전망도 통계청 장래인구특별추계 중 최악의 시나리오인 저위 추계는 제외한 채 중위와 고위 추계를 반영했다. 앞서 처음 장기 재정 전망을 내놨던 2015년에는 중위 추계만 반영했다. 반면 국회예산정책처는 저위, 중위, 고위 추계를 모두 반영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저위 추계는 실현 가능성이 낮아 전망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기재부의 거시경제 전망도 국회예산정책처에 비해 낙관적이다. 기재부가 인용한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 전망은 2020~2030년 연평균 GDP 증가율이 2.3%인 반면 국회예산정책처의 자체 전망은 같은 기간 연평균 2.0%다. 전문가 “기재부 전망 비현실적”전문가들은 기재부의 전망치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동안 국가채무비율은 정부 전망보다 항상 높게 올라갔다”며 “이번 정부 재정 전망도 과거와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가정한 거시경제 전망이 실현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기재부 전망과 관련해 가정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2019년 인구는 통계청 중위 추계보다도 적었던 것으로 나타났다”며 “기재부가 재정 전망에서 고위 추계를 반영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