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3일) 집회가 원천 봉쇄됐다. 1만 명이 넘는 경찰이 300여 대의 버스로 서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일대 4㎞에 차벽(車壁)을 세워 차량시위를 포함, 모든 집회를 막은 결과다. 경찰은 서울 도심 진입로 90곳에 검문소를 설치했고 시청과 광화문 인근에서는 수시로 불심검문까지 벌였다.
군사독재 시절 비상계엄이 선포된 듯한 분위기였다. 코로나19의 심각성을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앞서 일부 단체의 8·15 집회에 대해 여론이 따가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개천절 집회에 대한 정부, 서울시, 경찰의 대응은 국민 기본권을 침해한 과잉 대응이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친(親)정부 성향의 민변조차 “차량시위를 범죄로 간주하고 불이익을 주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상당하다”고 했을까 싶다. 참여연대도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봉쇄 근거로 ‘감염병 예방법’과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을 대지만 헌법상 ‘비례의 원칙’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
무엇보다 불심검문 과정에서 태극기를 실은 차량을 집중 단속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위험 예방차원이라지만 개천절에 태극기 소지를 단속하는 게 말이 되나. 지금이 무슨 일제강점기인가. 집회 봉쇄 자체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과잉단속이 ‘선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방역을 위해 ‘드라이브 스루’ 검사를 장려해왔고 지난 7월 이석기 석방 요구 차량시위는 허용했다. 그런데 유독 개천절 차량시위만 막은 것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코로나가 정부 규탄 시위자나 차량을 통해서만 전염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철저한 방역’이 집회 원천봉쇄의 근거라면 추석 연휴 중 다수 대중이 모일 만한 모든 장소 역시 폐쇄했어야 마땅하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서울 인근 놀이공원에는 연일 수만 명이 차량과 함께 몰렸고, 서울시내 백화점 식당 등에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인파가 북적였다. 연휴기간에 제주도를 찾은 사람만 20만 명이 넘었다.
개천절 집회 ‘엄단’을 강조하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연휴기간 중 김해 봉하마을을 찾았다. 국민에게는 고향 방문조차 자제하라고 해놓고 여당 대표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방으로 내려가 사람들과 어울린 것이다. 코로나가 특정 장소에서, 특정 정치성향을 띤 사람들만 걸리기라도 한다는 얘긴가. ‘정치 방역’ ‘방역 내로남불’ 등의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방역’을 앞세워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도 모자라 차별까지 둔다면 정상국가로 볼 수 없다. 이런 게 ‘K방역’의 민낯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