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확진에 청와대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미국 권력의 최고 핵심부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뚫린 만큼 청와대도 방역은 물론 외교, 미국 대선 등의 현안에 미칠 복합적 영향을 주시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호프 힉스 보좌관이 백악관내 코로나 확진의 초기 전파자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청와대 참모진들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현재까지 청와대 참모진 가운데 코로나19 확진자는 한명도 없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염돼 청와대내 '1호 확진자'라는 불명예를 떠안을 수 있다는 부담감이 참모들 사이에서 팽배하다. 이 때문에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선 '마지막까지 단 한명의 확진자도 없어야겠지만, 혹시 걸린다면 정무수석실이 그나마 낫다'는 우스갯 이야기까지 나온다. 청와대 안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대부분의 수석실과 달리 정무수석실은 국회의원들과의 만남 등 업무 특성상 외부인 접촉이 잦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재성 정무수석과 김광진 전 정무비서관은 지난달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기자와 같은 공간에 있던 국회의원을 접촉했다는 이유로 하룻동안 청와대로 복귀하지 못한 채 외부에 격리되는 일을 겪기도 했다. 여야 의원들을 빈번하게 만나는 최 수석은 코로나19 검사까지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고생'도 겪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대통령 대면 보고를 들어가는 주요 비서관급 이상은 항상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부담감이 클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감염병에 대한 우려때문에 대통령과 접촉이 잦은 비서관급 이상 참모진은 독감예방접종도 의무사항이다. 청와대 근무 이전까지 단 한차례도 독감접종을 받아본 적이 없는 A 수석은 근무 초기 직원으로부터 '독감접종을 받아야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건강체질이라 전 독감 예방접종 받아본적이 없고 안받아도 괜찮다"고 답했던 A수석은 예상치못한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수석님 건강때문이 아니라 대통령 전염 우려때문에 대면 보고를 하는 참모들은 독감접종 의무"라는 해당 직원의 설명을 듣고 머쓱해졌다고 한다.
청와대내에서 대통령과 수시로 접촉하고 티타임을 갖는 수석급 이상 참모들이 코로나19 상황이 2단계로 격상된 후 외부인들과의 공식적 저녁은 물론 점심까지 취소하고 '몸 사리기'를 하는 것도 확진시 파장이 예단하는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국내와 달리 백악관은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진 이후에도 마스크 착용 등 방역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아오던 터에 트럼프 대통령 내외와 백악관 참모들이 한꺼번에 확진판정받은 사태가 발생,파장이 예상된다.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유세는 물론 외교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당장 이달중 한국을 찾을 예정이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한 일정도 백악관내 코로나19 확진 사태 여파로 연기됐다. 폼페이오 장관은 4~6일 일본에서 열리는 다자회의 '쿼드 외교장관 회담'을 마친 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외교부는 4일 "불가피한 사정으로 일정이 연기됐다"고 설명했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 등 4개국 외교장관이 참석하는 쿼드회담은 다자회의라 일정연기가 어려워 예정대로 진행한 반면 한국 방문은 강경화 외교부장관 초청일정이라 연기를 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확진이 권력승계서열 4위인 국무장관의 해외 순방일정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도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 연기와 달리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예정대로 이달중순께 한국을 찾을 예정이여서 대조를 보인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에 이어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의 책임론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와중에 미중 양국 외교 수장의 외교일정이 엇갈린 셈이다. 코로나19 극복 성공사례를 부각시키려는 중국이 이번 기회를 외교적으로 적극 활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왕이 외교부장과 양제츠 국무위원의 외교 동선이 겹치는 모습이 잦은데 과거에는 외교적으로 보기 드문 일"이라며 "중국이 미국의 압박속에 외교지평을 넓히는 동시에 코로나 극복 이미지를 국제적으로 적극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