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마르지엘라’(30일 개봉)는 ‘패션계의 앤디 워홀’ ‘혁신의 아이콘’ 등으로 불린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67)의 패션 세계를 조명한다.
마르지엘라는 1988년부터 20년간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현대 패션 역사상 가장 큰 균열을 일으킨 뒤 돌연 은퇴했다. 유럽 패션계에서는 그를 세계 패션사 10대 거장으로 꼽는다. 한 번도 미디어에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마르지엘라는 이번 다큐멘터리에서도 내레이터로서 목소리만 들려줄 뿐이다. 그가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익명성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고 일에 몰입하기 위해서였다고 회고한다.
마르지엘라는 당대 패션쇼 시스템과 여성의 스타일에 논쟁을 불러온다. 그의 패션은 기존처럼 여성의 성적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데 초점을 두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하는 지적인 여성의 일상복을 제작하는 데 집중한다. 화려한 고급 옷이 아니라 서민들의 빈티지 패션을 추구한다.
그가 패션의 형식을 철저히 파괴하는 장면들이 재미있다. 모델이 여름 드레스에 겨울 부츠를 신고 무대를 걷는데 부츠 앞부분을 잘라 발가락을 드러내 시원하게 느껴진다. 마스크를 쓰거나 가발로 얼굴을 완전히 덮은 모델이 어린이를 무동 태우거나 비닐 옷을 걸치고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마르지엘라는 양말로 스웨터를 짜거나 접시 조각으로 조끼를 제작하는 등 기존 패션의 고정관념을 깬다. 패션쇼 장소 역시 도심을 벗어나 주차장으로 바꾸기도 한다. 영화 속 마르지엘라의 행적은 관객들에게 창조적인 자극을 주기에 충분하다.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유의 단초를 제공한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