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규제권력 뒤에서 웃는 前官들, 공정위뿐인가

입력 2020-09-28 17:54
수정 2020-09-29 00:23
정부·여당이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일감 몰아주기’ 대상 확대 등 기업 규제를 대폭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자 공정거래위원회 전직 관료들의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기업들이 규제와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 공정위 전관(前官)을 사외이사 등으로 앞다퉈 영입하고 있어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반기보고서를 제출한 상장사 중 38곳이 공정위 위원장, 부위원장, 상임위원, 사무처장 등을 지낸 전직 고위관료를 사외이사로 두고 있다. 공정위의 규제 강화와 퇴직 이후 보장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의구심이 일면서 ‘이해 상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현직들은 ‘규제의 칼’을 휘두르고, 전관들이 민간에서 몸값을 높이는 사례는 공정위만이 아니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 소위 경제 권력기관들에선 일반화된 패턴이다. 규제가 많고 강한 부처일수록 전관들은 기업 사외이사는 물론 로펌, 회계법인 등의 영입 수요가 늘어난다. 공정위가 기업들에 과징금을 과도하게 부과하고 그로 인해 로펌에 재취업한 공정위 전관들은 일거리가 넘치는 게 현실이다. 최근 법무부가 집단소송제 확대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변호사들이 호경기를 맞게 됐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폐단이 가능한 것은 우리 사회에 전관예우 관행이 여전히 뿌리깊기 때문이다. 전관들의 청탁 등에 대해선 현직들이 호의적으로 처리하는 관행이 관료 사회에 남아 있다. 그러다 보니 전직 관료들이 전문성과 경륜보다는 해당 부처에 대한 영향력 때문에 민간에서 더 각광받는 것도 사실이다. 선진국에선 제도와 관행으로 엄격히 금지돼 있는 전관예우가 한국에서 아직도 통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법과 제도의 적용 잣대가 전관의 청탁에 따라 고무줄식으로 변하는 것이라면 그런 행정은 정당성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규제 근거인 법과 제도는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용돼야 한다. 기업에만 투명성과 공정성을 요구할 게 아니라 정부 행정부터 솔선수범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전관예우의 관행을 뿌리뽑을 수 있도록 현행 3년인 퇴직 공직자의 재취업 제한기간 연장을 포함한 공직자 윤리규정 강화를 검토해 볼 만하다. 전관예우 관행을 의식해 규제를 강화하고, 전관들이 민간에서 우대받는 악순환 고리를 끊지 않으면 공직사회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할뿐더러, 불필요한 규제가 양산되는 구조적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