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7일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를 우리 군당국이 수색하는 과정에서 북측 영해를 침범했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5일 이번 사건과 관련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내용의 전통문을 청와대로 보내온 지 이틀 만이다. 북한은 또 자체적인 해상 수색을 통해 이씨 시신을 수습하면 남측에 송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군당국은 “우리 해군과 해경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에서 정상적인 수색 활동을 전개 중”이라며 “북한과 우발적 상황을 만들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태도 바뀐 北 “영해 침범 말라”북한 관영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남조선 당국에 경고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우리는 남측이 자기 영해에서 (이씨 시신 수습을 위한) 그 어떤 수색 작전을 벌이든 개의치 않는다”며 “그러나 우리 측 영해 침범은 절대로 간과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남측이 지난 25일부터 숱한 함정과 기타 선박을 수색 작전으로 추정되는 행동에 동원하면서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침범하고 있다”며 “이 같은 남측의 행동은 우리의 경각심을 유발하고 또 다른 불미스러운 사건을 예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1999년 우리 정부와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은 백령도, 연평도 등 서북 5개 도서 위쪽으로 설정돼 있는 NLL보다 훨씬 남쪽으로 내려와 있다. 북한은 6·25 전쟁 직후 유엔군 사령관이 설정한 NLL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를 ‘서해 열점 수역’ ‘서해 분쟁 수역’ 등으로 표현해왔다. 북한 주장대로라면 우리 군당국이 현재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는 연평도 인근 해역은 북한 수역에 포함된다. 남북 간 해묵은 이슈인 ‘NLL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2018년 4·27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 합의를 맺을 때도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또 “우리는 서남 해상과 서부 해안 전 지역에서 수색을 하고, 조류를 타고 들어올 수 있는 시신을 습득하는 경우 관례대로 남측에 넘겨 줄 절차와 방법까지 생각해 두고 있다”고 했다. 이어 “최고 지도부의 뜻을 받들어 남과 북 사이의 신뢰와 존중이 절대로 훼손되는 일이 추가로 발생하지 않도록 필요한 안전 대책들을 보강했다”고 밝혔다. “靑 ‘공동 조사’ 요구 회피하려는 의도”북한의 이날 ‘우리 영해 침범’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추가 또는 공동 조사’ 요구를 묵살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청와대가 지난 25일 요구한 추가 진상 조사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으면서 남측 시선을 NLL로 돌리려는 듯한 모습”이라며 “추가·공동 조사에 미리 선을 그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도“북한이 2년 만에 느닷없이 NLL 문제를 건드린 것은 최고 지도자가 직접 나서서 사과까지 한 사안인 만큼 남측은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했다.
이번 사건은 추가적인 정밀 조사를 하지 않고 이대로 덮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북한 전통문에 담긴 △(24시간 넘게 바다에서 표류해 탈진 상태에 빠진) 이씨를 취조하던 중 그가 도망치려 했다 △구명조끼를 착용한 이씨가 총격을 받고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40분간 부유물(구명조끼)을 불태웠다 등의 해명은 우리 군의 분석과 극명하게 엇갈린다. 북한 당국의 협조 없이는 사건 당시 진상을 알아내기가 사실상 어렵다. 박 교수는 “북한은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 사건 때처럼 어영부영 넘어가려는 속내를 내보이고 있다”고 했다.
해경은 이씨의 피살 전 행적에 대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인천해양경찰서는 28일 이씨가 사건 당일 탔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의 선내 폐쇄회로TV(CCTV)와 항해 장비, PC 하드디스크 등에 대한 분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할 예정이다. 해경은 이를 토대로 이씨가 월북 의사를 밝혔다고 볼 만한 정황이 있는지 등을 살필 계획이다.
하헌형/최다은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