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추후납부 20년서 10년 단축 땐…月 수령액 49만→24만원

입력 2020-09-25 17:20
수정 2020-09-29 15:57

내지 않던 국민연금 보험료를 한꺼번에 낼 수 있는 기간이 10년 이내로 제한된다. 국민연금 추후 납부 제도가 중산층 이상의 재테크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커지자 정부가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25일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열어 추납 가능 기간에 이같이 제한 기준을 설정하기로 했다. 국민연금 추납은 가입자가 생활고 등으로 보험료 납부를 한동안 중단했다가 생활 형편이 나아지면 중단했던 기간의 보험료를 한꺼번에 낼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기업 규모와 근로 형태에 따라 처음엔 국민연금 가입 자격을 얻지 못하다가 나중에 자격을 얻은 이들도 추납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2016년부터는 가정주부와 기초생활수급자까지로 추납 제도 대상자가 확대됐다.

하지만 민간 연금상품보다 국민연금 수익이 높은 점이 알려지면서 ‘재테크형 추납’이 급증해 논란이 커졌다. 예컨대 241개월치 보험료인 1억150만원을 추납한 서울 송파구의 한 여성은 월 연금 수령액을 35만원에서 118만원으로 늘렸다. 7년2개월만 국민연금을 받아도 ‘본전’을 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놓고 “매월 성실하게 보험료를 내는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박탈감을 준다”는 비판이 많았다. 변칙적인 방법으로 수급자와 수급액이 늘면서 국민연금의 재정 부담이 가중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추납 기간을 10년으로 제한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지난 7월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됐지만 아직 논의가 시작되지 않았다. 복지부는 연내 이 법률안의 국회 통과를 추진하기로 했다. 추납 통한 수급액 늘리기 차단…연금 사각지대 해소 대책도 내놔국민연금의 추후납부 기간을 10년으로 제한하기로 한 25일 보건복지부 결정은 관련 배경이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전까지만 해도 국민연금 추납은 실직이나 폐업 등으로 보험료 납부가 불가능해진 경우에만 가능했다. 하지만 2016년부터 이른바 ‘경단녀(결혼·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여성)’까지 확대됐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 가입자와 결혼한 여성은 보험료 납부를 중단하면 국민연금에서 탈퇴한 것으로 간주해 결혼 기간에 대한 추납이 불가능했지만 이때부터 가능해졌다. 1999년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간 직장생활을 하며 보험료를 낸 여성은 추납 신청을 하면 월 9만~22만원까지 과거 20년간의 보험료를 한번에 몰아낼 수 있게 됐다. 2015년 5만8000명이던 추납 신청자가 지난해 14만7000명까지 급증하게 된 핵심 이유다.

1.2~4배에 이르는 국민연금 수익비(납부액 대비 수급액 비율)가 고소득자와 자산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것도 영향을 미쳤다. 민간연금은 수익비가 1배도 안 되는 상품이 허다한 상황에서 노후준비를 위한 재테크 수단으로 국민연금 추납이 떠올랐다. 지난해 서울 시내에서 5000만원 이상 고액 국민연금 추납 신청자의 38.4%는 이른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거주자였다. 지난해 추납자의 11%인 1만6000명은 10년치의 국민연금을 추납했다. 20년치 이상을 추납한 사람도 536명이었다.

추납으로 늘어난 국민연금 수급액은 생애 내내 영향을 준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2개월로 원래는 연금 수급권이 없었던 A씨가 대표적이다. 286개월치의 보험료 2600만원을 추납하며 월 45만7000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B씨도 283개월치의 보험료 4330만원을 내고 국민연금 월 수령액을 0원에서 78만원으로 늘렸다.

추납 제도를 악용하려는 시도는 정치권에서도 있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만 18세 청년에게 한 달치 국민연금 보험료를 도 재정으로 내주는 정책을 2018년 추진했다. 국민연금 최초 납부 기록이 있으면 나머지 기간은 보험료를 내지 않더라도 나중에 추납을 통해 수급액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을 이용한 정책이다. 하지만 “국민연금 기금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성실한 국민연금 납부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이런 시도는 복지부와 경기도의회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예정대로 국민연금법이 개정돼 추납기간이 10년 이내로 짧아지면 그에 따른 혜택도 줄어든다. 국민연금공단 분석에 따르면 9만원씩 20년을 추납한 가입자의 월 수령액은 37만8000원이지만, 이 기간이 10년으로 줄어들면 수령액이 18만9000원에 머물게 된다. 월 18만원을 납부하는 추납 신청자는 20년 기준으로는 월 48만8000원, 10년 기준으로는 월 24만4000원을 받게 된다.

일부 계층에서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추납 제도 자체를 폐지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국민연금 제도 시행의 역사가 짧아 사각지대가 넓기 때문이다. 10인 이상 사업장은 1988년부터 의무가입이 시행됐지만 1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는 2006년에야 의무가입 대상이 됐다.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독일(5년), 오스트리아(6년) 등 다른 국가들보다 긴 추납기간을 인정하기로 한 이유다.

복지부는 이날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대책도 함께 내놨다. 근로일수와 근로시간이 가입기준에 미달하더라도 월 소득이 215만원이 넘으면 국민연금 가입대상에 포함하기로 하고 관련 시행령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8월부터는 월 8일 이상 일하는 일용직 건설 근로자도 가입 대상자에 넣었다. 이에 따라 올해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일용직·단기 근로자는 168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34만 명 늘어날 전망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