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사진)이 25일 해양수산부 공무원 A씨 피살 사건에 대해 이례적이고 신속하게 사과한 것은 가뜩이나 냉각된 남북한 및 미·북 관계를 최악으로 몰고 가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다음달 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의 방한을 앞둔 상황에서 미국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시신 훼손’에 대한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임시방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특정한 일에 대해 우리 정부에 사과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간단한 유감 표명을 넘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발생했다’ 등의 표현을 쓴 것은 북한으로선 최고 수준의 사과”라고 했다. 북한은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사건과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 등 대남(對南) 도발 때마다 궁극적인 책임을 우리 정부에 떠넘기는 행태를 보였다.
이례적인 사과 배경에 대해 박원곤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는 “북한이 이 사건에 대해 적반하장 식으로 나오면 미국의 태도도 ‘강경 모드’로 바뀔 수밖에 없다”며 “김정은은 미·북 관계가 더 얼어붙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김정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수해 복구에 전념하기도 모자랄 판에 이번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김정은으로선 우리 정부의 ‘시신 소각’ 주장으로 인한 국제적 비난 여론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이날 A씨를 해상에서 사살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시신을 불태웠다는 우리 군당국 주장은 전면 부인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사과로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헌형/강영연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