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년 동안 남학생만 다니던 대학에 갑자기 여학생이 들어왔다. 역사에는 정책을 바꾼 결정만 기록됐다. 정작 쉼 없이 성차별에 대항해 온 여학생들의 이야기는 묻혔다.”
미국 역사학자 앤 가디너 퍼킨스는 저서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를 통해 미국 예일대 여학생들이 벌였던 투쟁을 되짚은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금녀(禁女)의 벽을 깬 여학생 42명을 인터뷰하고 예일대 학보사 기사 수천 건 등을 파헤쳐 이 책을 썼다.
저자에 따르면 예일대가 여학생을 받아들인 배경에는 ‘성차별’이 깔려 있다. 1968년 킹먼 부르스터 주니어 예일대 총장은 흑인 신입생 수를 늘리는 등 진보적인 행보를 보였지만 여학생에게 자리를 내주진 않았다. 268년 동안 이어온 전통이 깨진 것은 경쟁 학교에 우수한 남학생을 빼앗기게 되면서다. 당시 명문대 남학생들에게 여자친구는 ‘가진 것 중 가장 귀한 물건’이었다. 하버드대는 인근 레드클리프 여대생에게 수강 기회를 제공했고, 프린스턴대는 남녀공학 전환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자는 “하버드대와 예일대 모두 입학 허가를 받은 학생 중 4분의 3이 하버드를 택했다”며 “남학생만 득실거리는 예일대에 입학하지 않겠다는 예비 신입생들이 총장을 움직였다”고 말한다.
첫발을 내디딘 여학생들에겐 성폭행 위협에 노골적인 차별까지 대학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굴하지 않았다. 총장 ‘특임비서’ 엘가 와서먼은 여학생들이 고립될 걸 염려해 입학 조건에 ‘리더십’ 항목을 넣었다. 그 결과 ‘기개 있고 강인한 여학생’들이 선발됐다.
여학생들은 각종 자치단체를 꾸려 성차별적 제도를 철폐했다. 가장 큰 성과는 남녀할당제 폐지다. 1972년 신입생 1200명 중 최대 200명까지 여학생을 받는 관행을 거센 저항운동으로 없앤 것이다. 폐지 후 5년도 되지 않아 여성 신입생 비율은 46%로 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저자는 “50년이 흘렀지만 여학생 다섯 명 중 하나는 교내 성폭행 피해를 호소하고, 여성 총장은 선출된 적도 없다”며 “예일대에는 여전히 여성이 더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