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영의 데이터로 본 세상] 비대면 시대 몰입의 방법

입력 2020-09-23 17:21
수정 2020-09-24 00:08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는 한 템포 느린 일상을 마주하게 됐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뜻밖의 장점도 가져다줬다. 평소엔 하기 어려웠던 일에 ‘몰입’할 시간을 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몰입이란 시간이 주어진다고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문득 궁금해졌다. 높은 창의성을 지닌 예술가와 발명가는 평소 어떻게 일을 할까? 이들의 업무 스타일이 비대면 일상을 효율적으로 보내는 데 참고가 될 수 있을까?

창의성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들의 인터뷰에서 몇 가지 전략을 찾아봤다. 먼저 ‘끝장을 보는 형태’가 있다. 발명가인 토머스 에디슨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미국 뉴저지주의 커다란 창고를 개조해 연구원들과 밤낮없이 발명에 몰두했다고 한다. 업무를 방해할 다른 요소를 최소화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이디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전략이다.

‘출퇴근 형태’도 있다. 장편소설 작가들의 집필 과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략이다. 작가는 하루에 써야 할 원고지 분량을 정해놓고 작업실에서 정해진 시간에 계획된 만큼만 집필하고, 나머지는 내일을 위해 남겨둔다고 한다. 글이 잘 쓰이는 날도 정해진 분량만큼만 적고 펜을 내려놓는 것이 그들이 긴 레이스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는 전략이다. 몰입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들 서로 달라 보이는 이 두 가지 전략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일상에서 ‘우연한 창의성’을 기대하지 않고 몰입을 위한 시간과 장소를 의도적으로 계획했다. 신경생물학적으로 해석하자면 이런 몰입의 상태를 도파민과 엔도르핀을 비롯한 화학물질이 다량 분출되는 ‘플로 상태(flow state)’라고 한다. 플로 상태에서는 굉장한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는 플로 상태에 도달하는 데 장애물이 많다. 넘치는 미디어와 주변의 유혹으로 몰입 없이 분주히 지나가 버리기 십상이다. 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데이터 분석가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럴수록 마음 내킬 때가 아닌 충분한 몰입의 시간을 확보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중 손쉽게 도입해볼 수 있는 아이디어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는 시간 전략으로 캘린더에 목표를 적는 것이다. 《5AM 클럽》의 저자 로빈 샤르마는 “캘린더에 넣어진 목표만이 이뤄진다”고 말한다. 화목한 가정이 목표라면 가족이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시간을 일정에 넣고, 작가가 목표라면 사색을 위한 산책을 계획하는 식이다. 큰 목표에 다가가기 위한 작은 실천을 캘린더에 배정해, 창의적으로 이를 실천하기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둘째는 장소 전략으로, 영감을 주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애플을 이끌었던 스티브 잡스는 시각적 사고를 위해 화이트보드를 잘 활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낙서가 가능한 벽, 화이트보드 또는 창문에 유리보드 마커를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홈 오피스는 훌륭한 영감의 공간으로 변할 수 있다. 꿈을 시각화하고 응원하기셋째는 변화 전략으로서의 낯선 경험이다. 낯선 땅과 환경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유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낯섦을 경험할 다양한 기회가 사라졌지만 새로운 책이나 영상으로 낯섦의 간접경험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이를 실제로 실행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내 머릿속에 큰 꿈을 시각화하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보다는 아무 생각 없이 바쁘게 하루를 보낼 때가 많다. 아무도 몰랐을 작은 실수나 남의 말에 자책했던 때는 또 얼마나 많은가. 창의성은 위축된 마음에서 나오기 힘들다.

그래서 필자는 창의성과 풍요로움의 비밀을 배우고 난 이후에는 자신에게 또 남에게 조금 더 응원의 한마디를 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초등생 아이와 하루에 꼭 해야 할 몇 가지 목표를 체크하는 달력을 만들었다. 그리고 진부할 수 있지만, 잠들기 전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얘기해주고 오늘의 목표를 이뤄 대단하고 기쁘다고 말해준다. 아이는 이미 백만 번 들은 이야기라는 표정이지만, 내심 밝은 표정으로 잠든다.

비대면 시대의 일상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누구에게는 무료할 수도 또 절박할 수도 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우리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을 창의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살아가길 바란다.

차미영 < 기초과학연구원 수리 및 계산과학 연구단 CI·KAIST 전산학부 부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