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 메기' 낚는 정부 헤드헌터를 아시나요

입력 2020-09-23 17:19
수정 2020-09-24 02:39

정부 내 민간 전문가 채용이 급증하고 있다. 국·과장급 개방형 직위의 민간 채용 비율은 5년 새 세 배 늘었다. 숨은 공신은 이른바 ‘정부 헤드헌터’다. 기존 공직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메기’ 역할을 해줄 ‘어공(어쩌다 공무원)’을 낚는 이들은 올 들어 중앙부처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채용까지 범위를 넓혀 민간 인재 영입에 나서고 있다.

23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중앙정부 개방형 직위(국·과장급)에 민간인이 임용되는 비율이 5년 만에 세 배 증가했다. 2014년 전체 개방형 직위 430개 중 민간 채용이 64명(14.9%)에 그친 것이 지난해에는 458개 중 198명(43.2%)으로 늘었다.

개방형 직위는 공직 안팎을 불문하고 공개 모집을 통해 인재를 충원하도록 지정한 자리다. 과거 공무원들이 공모에 지원해 개방형 직위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최근엔 민간 전문가가 절반 가까이 채용되고 있다.

특히 개방형 직위 중에서도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거나 공모 지원자 가운데 적합한 인재가 없으면 인사혁신처 내 ‘정부 민간 인재 영입 지원’ 시스템이 가동된다. 지원자가 응모하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필요한 인재를 직접 찾아 나서는 ‘헤드헌팅’과 같은 방식이다. 이 업무는 인사혁신처 김윤우 인재정보담당관, 조윤정 사무관, 이현주 사무관 등 3인방이 전담하고 있다.

정부 헤드헌터는 개방형 직위에 적합한 민간 전문가를 발굴·설득하는 작업을 한다. 최종 채용은 서류 전형과 면접 등을 거쳐 각 정부기관이 결정한다. 공무원 채용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김 담당관은 “정부 조직 내에 헤드헌터가 있다는 사실이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헤드헌팅을 통해 지난 5년간 공직에 들어온 민간 전문가가 50명에 이른다”고 했다.

지난해 8월 우정공무원교육원의 첫 여성 원장으로 임용된 김희경 원장은 정부 헤드헌터들이 영입한 인물 중 하나다. LG CNS 등에서 29년간 일해온 김 원장을 영입하기 위해 조 사무관은 사무실 근처까지 찾아가 설득했다.

김 원장은 “만우절에 정부 조직에서 스카우트 제안 전화가 와서 처음엔 장난 전화로 오인했다”며 “인사처 분들이 근무지 인근까지 찾아와 정부에서 내 경험과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고 설득했을 때 공직사회 입문을 결심하게 됐다”고 전했다.

민간 전문가들이 정부 내에서 성과를 내는 것을 경험한 정부 부처 및 기관들이 추가로 헤드헌팅을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민간 전문가 5명을 잇따라 헤드헌팅으로 영입했고, 특허청도 5명을 차례로 뽑았다. 조 사무관은 “우정사업본부 보험위험관리과장 등 금융 관련 자리는 고액 연봉자가 많은 금융권의 특성상 처우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민간 수준의 고액 연봉이 아님에도 사명감을 지닌 전문가들이 공직사회에 들어와 긍정적인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정부 민간 인재 영입 지원’은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으로 확대 적용되면서 헤드헌터 3인방은 더 바빠졌다. 올 들어 지자체와 공공기관에 입관한 민간 전문가만 5명이다. 이 사무관은 “한전KPS 종합기술원장에 에너지 분야 전문가로 두산중공업 출신인 백민수 원장을 지난 6월 영입했다”며 “최근 공공기관에서 헤드헌팅 요청이 쏟아져 이 분야에서 민간 인재 영입이 한층 확대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헤드헌터 3인방도 민간 전문가 출신이다. 김 담당관은 삼성전자 반도체 인사그룹장을 지내는 등 삼성그룹에서 24년간 일했다. 조 사무관은 인크루트 취업컨설팅팀장, 이 사무관은 중소기업연구원과 과기정통부 미래인재정책과를 각각 거쳤다.

김 담당관은 “공고를 내고 지원자를 기다리는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인재를 찾아 나서는 것은 정부 조직 입장에선 불편하고 번거로운 과정”이라며 “정부 헤드헌팅이 확대되는 것은 공직사회에 전문성과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의지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간에서 충분한 활동을 한 뒤 국가를 위해 일하는 인생 2모작을 꿈꾸는 전문가, 공직 경험으로 네트워크와 경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전문가를 찾아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