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란 무엇인가. 금융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민간끼리의 사금융에서 파생된 주거 제공 기능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세입자를 양산하는, 당장 없어져야 하는 제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미래학적 해석으로 ‘집값은 하락할 것이다’란 주장에 심취해 주택을 보유하지 않으려는 현명한 투자자 집단(시장 ‘숏’에 배팅)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전세가격이 심상치 않다. 지난 2년 동안 전세가격이 이례적으로 안정됐었다는 사실은 그렇게 중요치 않다. 장기 시계열로 바라보자. 전세가격 상승률은 KB국민은행이 매월 발표하는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을 이용해 산출했다. 전국적으로 전세가격이 하락한 적은 2002년(-0.36%)과 2003년(-2.74%), 지난해(-0.01%)뿐이다. 서울은 특이하게 2008년(-1.75%) 하락 전환했을 뿐 계속 상승 추세를 이어갔다. 작년 서울 전세가격(2.50%)은 전국적인 안정화 상태에서도 상승을 지속했다. 다만 지난 10년간 상승률 중 최저였다.
아파트 준공량과 비교해 보면 상승세가 명확히 설명된다. 지난 몇 년 동안 많았던 아파트 준공량이 올 들어 줄어들고 있다. 전세가격은 아파트 입주량과 연동된다는 경험적 사실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입주량 증가는 2017~2019년에 집중됐을 뿐, 올 들어서는 대부분 지역에서 감소로 전환했다. 올해 누적 기준 전국 아파트 준공량은 18만6631가구다. 전년 동기(21만2734가구)의 87.7%다.
그동안 아파트 입주량과 전세가격은 왜 연동됐을까. 모든 아파트 주인들이 곧바로 입주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재 주거상황을 갑자기 바꿀 수 없는 사람들은 전세임차인을 구해 시간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지난해 ‘헬리오시티’(9510가구) 입주가 서울 전세가격을 초토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등장했던 것도 과거 사례 반복을 적용한 예측이었다. 그런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유는 너무나 명확하다. 1주택자조차 양도소득세 비과세와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받으려면 실거주(2년)를 만족해야 하는 것으로 제도가 변경됐기 때문이다. 미리 비과세 요건을 만족하기 위한 고육책은 전세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응당 나와야 하는 전세 공급이 급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전세 공급이 더 줄어드는 사태가 벌어졌다. 계약갱신청구권 때문이다. 자연스레 들고 나가야 하는 세입자들이 나가야 할 일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세입자 사이에도 물고 물리는 싸움이 벌어지게 됐다. 집주인들이 만들어낸 상황이 아니다. 전세가격 상승은 어디까지나 제도 변화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주택시장 안정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매매가격을 안정화하거나, 전세가격을 안정화하거나. 그런데 얼마 전 한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이런 말을 들었다. 아파트 가격 움직임이 어디 하루 이틀 된 것이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정부 정책은 전세가격의 안정화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전세가격 하락이 나타날 수 있다면 ‘패닉’으로 치부되는 30대뿐 아니라 4050세대의 매수 또한 멈출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가격안정을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기능이 아닌 인위적인 가격 제한으로 이끌려고 한다면 향후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두의 판단에 맡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