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비 달라 복비 내라…집주인 "비워주셔서 그저 감사합니다"

입력 2020-09-22 15:07
수정 2020-09-22 15:09
최근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전용 84㎡ 아파트에 전세를 놓고 있는 집주인 정모씨(45)는 세입자로부터 깜짝 놀랄 만한 요구를 받았다. 전세 계약 만료일에 맞춰 집을 비워줄테니 이사 비용과 새 집을 얻을 때 필요한 부동산 중개비를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정씨는 “요즘 같은 시기에 계약 만료일에 순순히 나가주는 것도 고마운 일이 아니냐는 식의 뉘앙스를 은근히 내비치며 비용을 요구했다”며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지만 혹시 마음이 바뀌어 안나간다고 할까봐 요청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임대차3법’ 시행 이후 집주인들이 ‘2+2년’ 연장권을 쥐고 버티는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한 속끓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미 시장에서는 집주인들이 세입자들에게 집을 비워주는 명목으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관행화되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서울 서초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전세계약이 끝나도 세입자들이 나가지 않을까봐 불안해하는 집주인들이 많다”며 “이같은 상황을 임차인들이 알고 있으니 각종 비용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집주인과 세입자간의 줄다리기가 팽팽해졌다.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이 집을 비워달라고 요청하면, 세입자는 임대차 3법이 시행되니 법대로 하겠다고 버티고 있어서다. 기존에 집을 비우는 것에 서로 합의한 경우에도 세입자들은 계약갱신청구권을 내세우며 말을 바꾸고 있다. 집을 약속대로 비우면서도 불합리한 요구를 내세우고 있다는 게 집주인들의 불만이다.


대표적인 것은 이사비와 중개수수료(복비) 등을 보상해주는 금전적 지원이다. 영등포구 전용 59㎡ 한 아파트에 전세를 놓고 있는 집주인 한모씨는 “올해 말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에 집을 비워주기로 약속했던 세입자가 돌연 이사비와 복비에 위로금까지 400만원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해왔다”며 “들어주지 않겠다고 하자 2년 더 살겠다고 으름장을 놓길래 울며 겨자먹기로 반값인 200만원을 지원해주기로 합의했다”고 토로했다.

‘전세금 10%’ 선지급도 관행이 돼가고 있다는 게 중개업소들의 이야기다. 세입자가 새로운 집에 이사를 가려면 전셋값의 10% 수준을 계약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이 자금을 집주인의 전세금에서 떼서 일부를 미리 내주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나가는 세입자에게 보증금 일부를 먼저 내주는 것은 관행”이라며 이같은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서울 부동산시장에서는 세입자의 전세 눌러앉기와 집주인들의 매물 거둬들이기가 동시에 영향을 미치며 물건이 급감하고 있다.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날까지 신고된 이달 서울 아파트 전세 계약은 2767건이다. 새 임대차보호법에 대한 우려로 거래가 크게 줄었던 전달(6637건)의 3분의 1 수준이다. 1~7월 서울 전세 거래량은 월평균 1만1000여건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세가는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감정원의 서울 아파트 전셋값 변동률은 6월 0.24%, 7월 0.45%, 8월 0.65%로 오름폭을 키워가고 있다. 서울 전역에서는 전셋값 최고가를 경신하는 아파트 단지가 잇따르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에 따르면 광장동 광장11현대홈타운 전용면적 84㎡ 전세는 이달 초 역대 최고가인 11억원에 거래됐다. 지난달 거래된 같은 주택형의 전세가(9억2000만원)보다 1억8000만원이나 올랐다. 강남에서는 도곡동 타워팰리스1차 전용 84㎡ 전세 매물은 이달 14억7500만원에 손바뀜했다. 직전 거래가(10억5000만원) 대비 4억원 이상 올랐다. 잠실동 레이크팰리스 전용 84㎡도 최근 전세보증금 12억원에 계약이 성사됐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